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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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16:3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구원의 역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이다. 중생(거듭남)의 역사는 성령의 사역이다. 성육신과 십자가의 역사는 구원에 있어 성자 예수님의 사역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육신과 십자가의 사건의 주체를 하나님이라고 선포한다. 즉 모든 구원의 역사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선, 예수님은 성육신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요3:17)이란 말씀에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의 의미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의미한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을 이 땅에 성육신하도록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이처럼(후토오스) 사랑하사”의미는 하나님께서 인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게 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말이다. 또한 “주셨으니”란 동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도록 내어주심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 편에서는 십자가를 지심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주체는 유대인도, 로마인도 아니다.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못박은 주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은 세상을 향한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목적은 멸망과 심판이 아니라 영생과 구원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은 모두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역사이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 구원의 길인 복음을 믿게 하는 성령의 중생의 역사를 통해 복음을 믿게 함으로써 우리를 구원의 자리에 이끄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성탄은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23.12.09 18:18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12월 둘째 주 주일은 성수주일이다. 성서 주일은 성도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기준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영감으로 주신 계시인 성경의 본질을 다시금 각성하고 이에 대한 성도의 이해와 자세를 새로이 하기 위한 절기이다. 영국 교회의 대주교인 그래머가 1549년 성서주일을 위한 기도서를 편찬하였고, 영국교회가 이를 대강절 둘째 주일의 기도문으로 사용해 온 것은 교회가 성서 주일을 전통적으로 지켜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서주일은 대개 대강절 둘째 주일에 지켜지기 때문에 그 시기는 보통 12월 첫째 주나 둘째 주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54년부터 12월 둘째 주일을 성서주일로 정하여 지켜오고 있다. 신구약 성경 66권은 약 40여명 정도의 저자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서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며 약 1500년의 기간에 걸쳐 기록된 책이다. 또 그 내용에 있어서도 각각 다른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거나 서로 다른 주제의 교리를 논하고 있다. 또한 문학적 구성이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성경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주제로 통일되어 있다. 또한 성경은 완전하여 일점 일획의 오류도 없으며 성경이 예언하는 바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결국 성경이 인간의 저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계시로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대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책의 종교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는 그 신앙과 생활을 오직 성서에 두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말씀의 실체요 핵심이신 성자 예수께서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리는 대강절 기간 내에 성서 주일을 정해 지켜온 것이다. 우리는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성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힘쓰고, 구원의 진리가 기록된 성서를 널리 반포하려고 힘써야 할 것이다. 

 
23.12.02 16:23

유월절과 희생양 메커니즘 

 

    기독교와 타 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르네 지라르(Rene Girard)라고 하는 프랑스의 기독교 문화 철학자이자, 사상가가 있다. 지라르의 명작 ‘폭력과 성스러움’은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 상을 받은 당시 인류 정신사의 위대한 발견으로 평가받았고, 앞으로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지라르의 명작이 되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서 모방이론과 희생양 매커니즘을 중심으로 희생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한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희생양 매터니즘이란 폭력적 성향의 집단적 전이현상이다. 좀 어려운 말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그는 세계의 모든 문화마다 예외없이 희생양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모든 문화마다 어느 한 공동체에 특히 그 공동체의 기득권 세력에게 불리하거나 안좋은 일이 있을 때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집단의 가장 변두리에 위치한 가장 연약한 존재를 희생양으로 만들어서 그 상황을 해결하거나 돌파하는 공통점이 있다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폭력을 당하더라고 보복이나 복수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희생양 매커니즘은 집단적 죄악이 들어 있다고 지라르는 생각한다. 하지만 르네 지나르가 보니까 유독 기독교만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기독교는 공동체의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하고 뛰어난 존재 즉 하나님 자신이 친히 희생양이 되셔서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즉 기독교는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발적인 자기 희생을 통해서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을 끊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르네 지라르가 원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 그냥 혼자서 순전히 학문적 목적으로 희생양 매커니즘을 연구하다가 하나님이 스스로 희생양이 되셨다는 대목에서 큰 깨달음과 감동을 받아서 자발적으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렇듯 유월절 희생 양처럼 십자가에서 스스로 자신을 희생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해 주는 가장 독특한 특징인 것이다.

23.11.25 18:31

식사의 힘 

 

 

   카렌 블릭센이 지은 바베트의 만찬이란 소설에 보면,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루터교 목사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두 딸(마르틴느, 필리파)이 대신해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그 교회는 몇 안남은 성도들과 그나마 교회에 출석하는 늙은 신도들은 관계가 틀어져 서로 말도 안하고 지내는 교회였다. 그런데 어느 날, 프랑스에서 바베트라는 여인이 두 자매를 찾아오게 되고, 12년 동안 식모살이를 하면서 요리와 집안의 살림을 도맡아 관리하고 마을에 어려운 사람을 알게 모르게 잘 챙긴다. 그런데 12년째 되던 어느 날 바베트가 복권이 당첨되어 1만 프랑의 상금을 타게 되었는데, 공교롭게 상금을 타는 날이 두 자매 아버지 목사의 백주년 생일과 겹쳐, 바베트가 그 당첨금으로 식사를 대접하게 되어진다. 드디어 생신날이 되고, 특별한 손님이 참석했다. 그는 젊은 날 첫 딸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한 기병대 장교였다. 이윽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식사를 하는 내내 어색한 침묵을 굳게 유지했지만 궁전에서 온 장군은 달랐다. 그는 근사한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기가 막힌 맛이라며 감탄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돌그릇에 새끼 메추라기가 담긴 요리가 나오자 장군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 요리는 전체 유럽을 통틀어서 오직 한군데 여자 주방장의 명성이 자자했던 프랑스 파리의 카페 앙글레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것이라며 탄성을 질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도 말문이 열리고,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원수처럼 지내면서 말도 섞지 않던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바베트가 대접한 만찬이 긴 세월 동안에 사람들의 마음을 옥죄고 있던 쇠사슬을 단번에 끊어버린 것이다. 잔치가 끝난 후에 마을 사람들은 행복에 겨워서 집으로 돌아갔다. 알고 보니 바베트는 한때 전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카페 앙글레의 바로 그 여자 주방장이었으며, 마을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복권에 당첨된 1만 프랑을 모두 썼던 것이었다. 바베트의 만찬은 진심을 담은 훌륭한 식사가 갖는 구원의 힘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맛있는 밥 한 끼가 사람을 치유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따라서 좋은 식사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23.11.18 17:31

제자의 다섯가지 삶 

 

   우리는 한 주간 존 스토트의 마지막 유작인 ‘제자도’란 책을 가지고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다섯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가 불순응입니다. 불순응이란 세상에 동화되고, 섞이고, 순응해서 이 세대를 본받아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두 번째 성화입니다. 성화의 삶이란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변화와 성장입니다. 이러한 성화의 삶을 위해 하나님은 성령과 교회와 목회자를 허락하셨습니다. 세 번째 섬김입니다. 섬김이란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합니다. 섬김의 대상은 모든 타자와 비롯해서 창조세계까지입니다. 섬김의 방법은 정의와 공의입니다. 정의는 공공의 사역이고, 공의는 긍휼입니다. 네 번째 환대입니다. 환대의 삶은 단순히 하나님 백성들의 교제, 즉 코이노니아를 넘어섭니다. 환대는 성도뿐만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환대는 연민을 통한 누군가를 진정으로 받아들여 주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삶을 환대의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유대인이나 로마인이나,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나,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환대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더 적극적인 환대를 베푸셨습니다. 환대의 삶은 누군가를 위로합니다. 다섯 번째 증인입니다. 증인의 삶이란 하나님 나라를 증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걸맞게 살아서, 하나님 나라 즉 예수의 존재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들어내는 삶을 의미합니다. 증인의 삶을 성숙과 관련없이 모든 성령이 내주하신 그리스도인의 즉각적인 반응입니다. 어떻게 참된 증인이 되어질 수 있습니까? 진정한 제자다움을 회복하고, 이웃과 공감하는 자가 되어 온전한 복음을 전할 때 가능합니다. 이처럼, 불순응, 성화, 섬김, 환대, 증인의 삶을 균형있게 이루는 삶이 제자의 삶입니다.

23.11.11 17:46

야곱을 통해 배우는 인생교훈

 

   우리는 성경의 족장들의 이야기 속에서 많은 인생의 교훈을 배운다. 특히 야곱은 우리와 같은 연약한 특성을 지닌 자이다. 그래서 그의 인생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야곱의 인생은 우리의 인생이 본향을 향하여 되돌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우쳐 준다. 성경은 항상 우리는 돌아갈 고향이 있는 존재라고 한다. 이 땅이 우리의 본향이 아님을 기억하라고 한다. 우리는 돌아갈 고향을 향하여 나그네의 삶을 사는 존재다. 그런데 이 땅이 나그네의 길이라고 해서 이 땅을 무의미한 세월을 보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확한 의미는 우리는 이 땅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따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자들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꿈을 실현하는 자들이다. 야곱의 인생은 그의 고백처럼 험난한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을 따라 살았다. 야곱이 한 일은 하나님의 꿈을 따라 살았고, 하나님은 복을 주셨다. 하나님을 따라 살면 그것이 복이다. 나그네 인생을 살면 두려움과 외로움이 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두려움에 빠지는데 그 대개의 이유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의 유무 때문이다. 그것에 따라 사람들은 두려움에도 빠지고, 헛된 안도감도 가진다. 그러나 인생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유무로 산다. 인생은 믿음으로 사는 길이다. 돈이 없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 두려운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살면 인생은 쉬운 길이 된다. 야곱의 인생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어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평생 그의 편이 되어주셨다. 그 하나님은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결코 인생은 두렵지 않다. 그리고 외롭지 않다. 야곱의 인생을 통해서 야곱의 편이 되어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바로 나의 하나님이심을 확고히 믿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23.11.04 18:32

행함으로 증명된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참된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사탄도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은 믿음의 열매, 행함으로 증명된다. 이처럼 행함이 따르는 믿음으로 의롭다라고 인정된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꺼이 번제로 내어 드렸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순종이라는 행함으로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라고 인정하셨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증해 주는 말씀이다. 따라서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는 말씀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칭의적 사건이 아니라, 창세기 15장에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는데, 그 의롭다함을 얻은 믿음이 참된 것임을 확증해 주시는 말씀이다. 결국 아브라함의 참된 믿음이 무엇으로 증명되었는가? 창세기 22장의 순종으로 증명되었다. 순종의 열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증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그의 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난 사건은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친 사건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믿음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건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참된 믿음은 그 믿음을 증명하는 행함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함들은 역으로 참된 믿음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과 행함은 함께 병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노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칭의적 믿음이 성화적 삶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칭의와 성화가 연결되어 있고, 성화와 영화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필연적 결과이다.

23.10.28 17:33

이 시대의 진정한 종교개혁은 무엇인가?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는 어떤 개혁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시면서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신 문화명령을 주셨다. 그러나 오히려 아담의 죄는 온 땅을 죄로 물들게 하며 죄가 관영한 세상이 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가 관영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노아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다시금 노아를 통해 그 뜻을 이루시길 원하셨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이 땅은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중심적인 자기주장으로 가득 찬 바벨의 세상이 되었다. 바벨은 하나님의 비전에 대항하여 흩어짐을 면하고자 한 인간의 저항이다. 바벨은 이기주의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가치의 전형이다. 자기주장과 교만의 가치가 팽배한 사단적 삶이다. 스스로 흩어지기를 면하고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하였다. 아담과 동일한 자기주장이요, 스스로 하나님 되려는 욕망의 표출이 바벨탑이었다. 바벨은 이처럼 인간의 신적 욕망이요, 자기중심적 가치의 극치였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현실을 보자. 하나님은 이 창조 시에 주셨던 문화명령을 그리스도를 통해 지상명령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즉 교회에게 주셨다. 교회는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복을 유통해야 할 곳이다.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자기 성을 쌓고 내부지향적인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바벨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성으로 지으셨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흩어지기를 면하고 자기 이름을 내고 하나님의 도성이 아닌 자기 성을 쌓아가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바벨과 다를 바 무엇인가? 오늘날 교회가 이 지상명령을 단지 사명으로만 여기고 교회의 본질과 존재목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 그곳은 바벨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진정한 종교개혁은 교회가 자기중심적이고, 바벨적 가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부르심 앞에 순종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복된 소식,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회복하는 것임을 확신한다.

23.10.21 17:29

연탄봉사에 초대합니다

 

   유난히 더웠고 습한 여름도 어느덧 물러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찬바람이 불면 옷을 몇 겹을 입고, 이불을 아무리 덮어도 추워 잠을 못자는 계절이 옵니다. 이에 올 겨울에는 우리 교회에서 작게나마 도움이 필요한 에너지 취약 계층에게 연탄 제공과 자원 봉사를 통하여 삶의 희망을 갖게 하려 합니다. 

   누군가에게 연탄은 선택사항이 아닌,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하고 꼭 있어야하는 필수 물품입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잘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연탄을 때지 않으면 추위를 견딜 수 없고 , 살 수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연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연탄이 아니면, 난방을 할  수 없는 분들이 서울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삼광교회가 연탄을 나누며 연탄처럼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데 동참합시다. 연탄이 단지 난방 에너지가 아니라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는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연탄 한 장 가격은 900원이고, 한 장의 무게는 3.3kg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사소한 금액이고 가벼울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귀하고 소중한 물건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받들고 섬기며,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을 주님의 사랑으로 나누길 소원합니다. 

   이번에는 국내 선교의 일환으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연탄 1,500 장을 우리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하려합니다. 연탄을 나누는 많은 봉사자의 참여와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우리 삼광교회를 통해서 세상이 조금더 따뜻하고 살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선교전도위원회 위원장 송태원 장로

 
23.10.14 17:48

역사적 아담의 문제

 

   한국교회와 신학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서구신학자들 사이에서는 한 세대 이전부터 역사적 아담 문제가 핫 이슈 중에 하나였다. 역사적 아담의 문제란 창세기 2-3장에서 나오는 아담이 창세기 1:26의 그 아담과 동일한 인물인가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우리의 신앙은 그렇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창세기 1-5장에서 등장하는 여러 명의 아담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창세기 1-5장까지는 오직 한 명의 아담이 나오는 것 같은데, 사실은 이 문제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에서는 개인의 이름에 히브리어 정관사 "하"가 붙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아담이 총칭으로 사용되면 하나님이 만드신 생물종으로서 인류를 뜻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아담 앞에 정관사가 사용되면 인간의 대표자 역할을 하는 개인 즉 언약적 대표, 원형적 인물의 의미를 띤다. 만약 아담이 부정형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개별적이고 역사적인 한 개인을 뜻한다. 따라서 오늘날 미국의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창세기 1:26-27절에 나오는 아담은 최초의 출연한 인간 집단으로서 인류를 뜻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창세기 2-3장에 나오는 아담은 최초의 인간집단에서 특별한 테스트를 진행할 목적으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원형적 존재, 혹은 언약적 대표로서의 아담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류 가운데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한 쌍의 부부를 창조하셨거나 선택하셨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특별한 테스트란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성전의 축소판이 에덴을 잘 관리하고 보살피는 동시에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 즉 신적인 삶을 받아 누릴 자격이 있는지를 전체 인류를 대신하고 대표해서 시험하는 것이었다. 사실 현재로서는 역사적 아담의 정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역사적 아담은 설화나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분명히 역사적 존재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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