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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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등불이 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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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8 17:31

제자의 다섯가지 삶 

 

   우리는 한 주간 존 스토트의 마지막 유작인 ‘제자도’란 책을 가지고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다섯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가 불순응입니다. 불순응이란 세상에 동화되고, 섞이고, 순응해서 이 세대를 본받아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두 번째 성화입니다. 성화의 삶이란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변화와 성장입니다. 이러한 성화의 삶을 위해 하나님은 성령과 교회와 목회자를 허락하셨습니다. 세 번째 섬김입니다. 섬김이란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합니다. 섬김의 대상은 모든 타자와 비롯해서 창조세계까지입니다. 섬김의 방법은 정의와 공의입니다. 정의는 공공의 사역이고, 공의는 긍휼입니다. 네 번째 환대입니다. 환대의 삶은 단순히 하나님 백성들의 교제, 즉 코이노니아를 넘어섭니다. 환대는 성도뿐만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환대는 연민을 통한 누군가를 진정으로 받아들여 주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삶을 환대의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유대인이나 로마인이나,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나,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환대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더 적극적인 환대를 베푸셨습니다. 환대의 삶은 누군가를 위로합니다. 다섯 번째 증인입니다. 증인의 삶이란 하나님 나라를 증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걸맞게 살아서, 하나님 나라 즉 예수의 존재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들어내는 삶을 의미합니다. 증인의 삶을 성숙과 관련없이 모든 성령이 내주하신 그리스도인의 즉각적인 반응입니다. 어떻게 참된 증인이 되어질 수 있습니까? 진정한 제자다움을 회복하고, 이웃과 공감하는 자가 되어 온전한 복음을 전할 때 가능합니다. 이처럼, 불순응, 성화, 섬김, 환대, 증인의 삶을 균형있게 이루는 삶이 제자의 삶입니다.

23.11.11 17:46

야곱을 통해 배우는 인생교훈

 

   우리는 성경의 족장들의 이야기 속에서 많은 인생의 교훈을 배운다. 특히 야곱은 우리와 같은 연약한 특성을 지닌 자이다. 그래서 그의 인생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야곱의 인생은 우리의 인생이 본향을 향하여 되돌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우쳐 준다. 성경은 항상 우리는 돌아갈 고향이 있는 존재라고 한다. 이 땅이 우리의 본향이 아님을 기억하라고 한다. 우리는 돌아갈 고향을 향하여 나그네의 삶을 사는 존재다. 그런데 이 땅이 나그네의 길이라고 해서 이 땅을 무의미한 세월을 보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확한 의미는 우리는 이 땅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따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자들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꿈을 실현하는 자들이다. 야곱의 인생은 그의 고백처럼 험난한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을 따라 살았다. 야곱이 한 일은 하나님의 꿈을 따라 살았고, 하나님은 복을 주셨다. 하나님을 따라 살면 그것이 복이다. 나그네 인생을 살면 두려움과 외로움이 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두려움에 빠지는데 그 대개의 이유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의 유무 때문이다. 그것에 따라 사람들은 두려움에도 빠지고, 헛된 안도감도 가진다. 그러나 인생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유무로 산다. 인생은 믿음으로 사는 길이다. 돈이 없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 두려운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살면 인생은 쉬운 길이 된다. 야곱의 인생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어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평생 그의 편이 되어주셨다. 그 하나님은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결코 인생은 두렵지 않다. 그리고 외롭지 않다. 야곱의 인생을 통해서 야곱의 편이 되어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바로 나의 하나님이심을 확고히 믿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23.11.04 18:32

행함으로 증명된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참된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사탄도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은 믿음의 열매, 행함으로 증명된다. 이처럼 행함이 따르는 믿음으로 의롭다라고 인정된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꺼이 번제로 내어 드렸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순종이라는 행함으로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라고 인정하셨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증해 주는 말씀이다. 따라서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는 말씀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칭의적 사건이 아니라, 창세기 15장에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는데, 그 의롭다함을 얻은 믿음이 참된 것임을 확증해 주시는 말씀이다. 결국 아브라함의 참된 믿음이 무엇으로 증명되었는가? 창세기 22장의 순종으로 증명되었다. 순종의 열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증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그의 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난 사건은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친 사건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믿음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건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참된 믿음은 그 믿음을 증명하는 행함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함들은 역으로 참된 믿음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과 행함은 함께 병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노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칭의적 믿음이 성화적 삶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칭의와 성화가 연결되어 있고, 성화와 영화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필연적 결과이다.

23.10.28 17:33

이 시대의 진정한 종교개혁은 무엇인가?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는 어떤 개혁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시면서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신 문화명령을 주셨다. 그러나 오히려 아담의 죄는 온 땅을 죄로 물들게 하며 죄가 관영한 세상이 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가 관영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노아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다시금 노아를 통해 그 뜻을 이루시길 원하셨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이 땅은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중심적인 자기주장으로 가득 찬 바벨의 세상이 되었다. 바벨은 하나님의 비전에 대항하여 흩어짐을 면하고자 한 인간의 저항이다. 바벨은 이기주의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가치의 전형이다. 자기주장과 교만의 가치가 팽배한 사단적 삶이다. 스스로 흩어지기를 면하고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하였다. 아담과 동일한 자기주장이요, 스스로 하나님 되려는 욕망의 표출이 바벨탑이었다. 바벨은 이처럼 인간의 신적 욕망이요, 자기중심적 가치의 극치였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현실을 보자. 하나님은 이 창조 시에 주셨던 문화명령을 그리스도를 통해 지상명령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즉 교회에게 주셨다. 교회는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복을 유통해야 할 곳이다.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자기 성을 쌓고 내부지향적인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바벨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성으로 지으셨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흩어지기를 면하고 자기 이름을 내고 하나님의 도성이 아닌 자기 성을 쌓아가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바벨과 다를 바 무엇인가? 오늘날 교회가 이 지상명령을 단지 사명으로만 여기고 교회의 본질과 존재목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 그곳은 바벨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진정한 종교개혁은 교회가 자기중심적이고, 바벨적 가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부르심 앞에 순종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복된 소식,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회복하는 것임을 확신한다.

23.10.21 17:29

연탄봉사에 초대합니다

 

   유난히 더웠고 습한 여름도 어느덧 물러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찬바람이 불면 옷을 몇 겹을 입고, 이불을 아무리 덮어도 추워 잠을 못자는 계절이 옵니다. 이에 올 겨울에는 우리 교회에서 작게나마 도움이 필요한 에너지 취약 계층에게 연탄 제공과 자원 봉사를 통하여 삶의 희망을 갖게 하려 합니다. 

   누군가에게 연탄은 선택사항이 아닌,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하고 꼭 있어야하는 필수 물품입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잘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연탄을 때지 않으면 추위를 견딜 수 없고 , 살 수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연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연탄이 아니면, 난방을 할  수 없는 분들이 서울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삼광교회가 연탄을 나누며 연탄처럼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데 동참합시다. 연탄이 단지 난방 에너지가 아니라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는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연탄 한 장 가격은 900원이고, 한 장의 무게는 3.3kg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사소한 금액이고 가벼울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귀하고 소중한 물건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받들고 섬기며,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을 주님의 사랑으로 나누길 소원합니다. 

   이번에는 국내 선교의 일환으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연탄 1,500 장을 우리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하려합니다. 연탄을 나누는 많은 봉사자의 참여와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우리 삼광교회를 통해서 세상이 조금더 따뜻하고 살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선교전도위원회 위원장 송태원 장로

 
23.10.14 17:48

역사적 아담의 문제

 

   한국교회와 신학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서구신학자들 사이에서는 한 세대 이전부터 역사적 아담 문제가 핫 이슈 중에 하나였다. 역사적 아담의 문제란 창세기 2-3장에서 나오는 아담이 창세기 1:26의 그 아담과 동일한 인물인가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우리의 신앙은 그렇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창세기 1-5장에서 등장하는 여러 명의 아담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창세기 1-5장까지는 오직 한 명의 아담이 나오는 것 같은데, 사실은 이 문제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에서는 개인의 이름에 히브리어 정관사 "하"가 붙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아담이 총칭으로 사용되면 하나님이 만드신 생물종으로서 인류를 뜻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아담 앞에 정관사가 사용되면 인간의 대표자 역할을 하는 개인 즉 언약적 대표, 원형적 인물의 의미를 띤다. 만약 아담이 부정형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개별적이고 역사적인 한 개인을 뜻한다. 따라서 오늘날 미국의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창세기 1:26-27절에 나오는 아담은 최초의 출연한 인간 집단으로서 인류를 뜻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창세기 2-3장에 나오는 아담은 최초의 인간집단에서 특별한 테스트를 진행할 목적으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원형적 존재, 혹은 언약적 대표로서의 아담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류 가운데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한 쌍의 부부를 창조하셨거나 선택하셨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특별한 테스트란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성전의 축소판이 에덴을 잘 관리하고 보살피는 동시에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 즉 신적인 삶을 받아 누릴 자격이 있는지를 전체 인류를 대신하고 대표해서 시험하는 것이었다. 사실 현재로서는 역사적 아담의 정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역사적 아담은 설화나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분명히 역사적 존재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23.10.07 17:03

하나님의 형상이란?

 

   우주와 지구의 창조의 핵심이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창조의 핵심입니다. 창세기 1:26에 보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의 창조는 창1:26에 보면 우리가 우리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의지적 결단에 의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입니까? 인간은 뛰어난 정신적 지성적 능력을 가졌습니다. 인간은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고 자유 의지를 통해 끊임없이 판단하고 결단하고 도전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언어소통을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두 발로 걸으면서 손을 자유롭게 쓰는 존재입니다. 또한 성경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근동의 시대에 여성의 인권개념이 없고, 여성을 남성의 악세사리로 생각한 그 시대에 성경의 기자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선언하는 것은 과히 혁명적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태동한 고대근동지역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첫째는 신의 우상이 곧 신의 형상입니다. 두 번째로 신의 살아 있는 모습 곧 왕들이 신의 형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의 조각품을 만들어 그 조각상들을 국경지역에 배치해 놓으면 그 조각상이 서 있는 자리까지가 그 왕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간주되었는데, 이때 왕의 조각상이 곧 형상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을 그분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지상을 통치하시기 위해서 지상 곳곳에 그분의 형상인 인간을 배치해 놓고 그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게 하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총치자로서 특별한 존재로 지음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그의 인종, 그의 피부색, 그의 성별, 계급 그리고 신체의 건강성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23.09.30 17:41

ㅎㅁㅅ 선교사 기도편지

 

   안녕하십니까? 먼저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하고 풍성한 은혜의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6월 중순에 요르단 암만에 무사히 입국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고 차라리 다른 나라로 가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손모으며 윗분이 행하시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공항에서 검문받고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오는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윗분이 역사하셨습니다. 윗분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요르단에 계시는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고 윗분이 저의 가정에 맡기실 일이 많은가보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윗분이 맡기실 일을 잘 그리고 열심히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손모아 주십시오. 제 가족도 8월에 잘 입국하여 잘 정착하고 있습니다. 다시 들어오게 되어 기존의 살림살이들은 다른 분들을 드린지라 다시 필요한 살림살이들을 사고 있습니다. 마치 처음 들어온 것처럼 물품을 사고 있어서 다시 정착하는데 시간과 힘이 많이 필요합니다. 아내가 건강하게 잘 감당하길 손모읍니다. 첫째로, 셋째는 과거에 다녔던 학교에 들어가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첫째는 간단한 국어와 산수를 공부해야 하는데 마땅한 선생님이나 학교가 없습니다. 첫째에게 알맞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도록 손모아 주십시오. 저는 9월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시골 지역에서 영어캠프를 열었는데 저는 알파벳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열심히 공부하여 가르치려 합니다. 수업 후에 가능한 가정도 방문하여 하늘 소식을 전하려 손모으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을 통하여 하늘 소식이 많은 가정에 전하여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미래는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영어를 통해 세계를 알아가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손모음 제목인데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거주비자입니다. 그런데 거주비자를 만들려면 현재 요르단 은행에 한화로 삼천팔백만원을 예치해야 합니다. 큰 돈이 필요한데 같이 손모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전하게 거주하여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손모아 주십시오.

23.09.23 16:52

창조주 하나님이신 신학적 근거

 

   성경의 첫 번째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창1:1의 함의는 무엇인가?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이 우주는 원래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주의 시작점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우주를 만든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우주는 저절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우주의 크기는 인간의 이성으로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우주를 만든 존재는 우주보다 더 큰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 존재의 능력과 지혜는 생각할 수 없다. 기독교는 그 창조주를 하나님이라고 한다. 따라서 창세기 저자는 1장에서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세 가지 신학적 기법으로 설명한다. 첫째, 히브리어 ‘바라')’ 동사이다. 히브리어 ‘창조하다’, ‘만들다’는 동사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바라')’이고, 하나는 ‘아싸’이다. 창세기 1장에서는 오직 ‘바라’만 사용한다. ‘바라’ 동사는 하나님이 주어일 때만 사용하는 동사이다. 하나님이 주체로써 세상을 만드신 주인공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바라’라는 동사를 사용한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가리키는 신명인 엘로힘과 야훼 중에서 창세기 1장은 엘로힘만 사용한다. 야훼란 신명은 사랑하고 돌보시는 자애로우시고 목자와 같은 하나님의 호칭이다. 엘로힘은 절대적인 존재 지존하신 분, 초월하신 하나님의 호칭이다. 창세기 저자는 창세기 1장에서 엘로힘만 사용한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만드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세 번째로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과정을 묘사하면서 창조의 단계마다 피조물의 이름을 지어주신다. 성경의 세계에서 누군가가 다른 것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그 사람과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하나님이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피조물의 창조주이심을 강조하는 기법이다. 이처럼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주인이라는 것을 이러한 신학적 기법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23.09.16 17:39

진짜 교회의 유력자는 누구인가?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와 기준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듯 합니다. 사람을 실력보다는 학벌로 판단하고, 사람을 돈으로 판단하고, 끌고 다니는 자동차로 지위를 가름하고, 몸에 걸친 옷으로 사회적 계급을 분류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유력자(有力者)라고 하는 분들의 행태를 보면 우리 사회의 심각성을 좀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서로 오고가는 대화의 수준이나, 언어사용을 보면 진짜 격이 떨어집니다. 배려, 존중, 진실, 예의, 적절한 언어사용, 등으로 평가되어야 할 모습이 사라진 듯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과연 우리의 신앙적 모습이 세상의 왜곡된 인격판단에 바른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을 고쳐낼 힘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왜곡된 잣대와 기준이 아닌, 진정으로 신앙인격과 행동을 가진 신앙의 유력자들입니다. 미국의 911테러 때에 소방관들이 건물이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그 건물 안으로 목숨을 걸고, 생존자를 구하러 들어갔습니다. 때문에 너무나 많은 소방관들이 건물과 함께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인원이 무려 343명이나 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 중에 하나가 소방관입니다. 자격요건도 까다롭고, 소방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또한 2011년 11월 23일에 있었던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서, 22살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였습니다. 고 서정우 하사는 마지막 휴가를 갔다가 연평도에 떨어진 포탄을 보고 휴가를 포기하고, 조국 수호라는 일념하나로 부대로 돌아가다가 사망했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이익보다 자신의 임무와 책임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유력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진정한 유력자들은 누구입니까? 세상의 왜곡된 잣대와 기준이 아닌, 진정으로 신앙인격과 행동을 가진 분들이 교회의 유력자들입니다. 신앙이 인격의 바탕 위에 세워지고, 그 인격의 바탕에 따라 실천하고 행동하는 신앙인이 바로 교회의 유력자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내가 참된 신앙의 유력자인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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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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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4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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