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광교회
WWW.SAMGWANG.OR.KR

세상의 등불이 되는 교회

전체
교회소개
주일예배
사진모음
15.01.25 14:24

    다음의 내용은 주성하 기자의 글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박준재 씨는 한중 수교가 막 이뤄졌던 1992년 즈음 중국에 처음 왔다.


초기엔 흑룡강 성에서 50여개의 교회를 만들어 농민들을 전도했다.


미국에서 모텔사업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가 무엇에 끌려 중국전도에 나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던 중 박씨는 연변에 탈북자들이 몰려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곧바로 연길로 자리를 옮긴 박씨는 흑룡강 성에서 전도했던 조선족들의 도움을 받아 탈북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탈북 고아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중국 공안에 두 번씩이나 체포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에 가서 잠깐 돈을 벌고는 그 돈을 들고 다시 태평양을 넘어 지구 반대편 중국으로 날아오기를 50여 차례나 반복했다.


그럼에도 2004년경부터 더 이상 탈북자를 돌볼 수 없었다.


2004년 11월 23일 그는 마지막까지 돌보던 10대 부흥이를 포함한 6명의 탈북자를 데리고 한국행으로 올랐다.


베트남 루트가 막혀 미얀마를 거쳐 라오스로 가기로 했다. 박씨는 어느덧 63세의 노인이 됐지만 항상 일행의 맨 앞에서 열대림을 헤쳤다.


정글을 헤맨지 7일 만에 라오스가 건너다 보이는 메콩 강에 도착했다. 밀항선을 구해보았지만 1인당 1만 위안을 불렀다.


고민하던 박씨는 시장에가 튜브를 사려했다. 시장을 다 돌아봐야 4개밖에 살 수 없었다. 강을 넘기 전 일행은 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박씨가 기도했다. “하나님 천국에 가게 해주세요 아내에게 미안하고.. 제 아들이 계속 선교활동을 하게 해 주세요”


무엇을 예감했을까 최우의 만찬이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일행은 가장 연장자인 박씨에게 튜브를 양도했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여성과 아이들에게 튜브를 넘겨주었다. 그러곤 자신은 배낭만 메고 메콩 강에 뛰어들었다.


메콩강은 사나웠다. 일행은 40분 가까이 정신없이 떠내려가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됐다.


그러나 박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배낭만 물에서 들락날락하였다. 부흥이는 나중에 알았다.


박씨는 헤엄을 잘 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강에서 몇 시간 할아버지를 부르며 목 놓아 울었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2005년 1월 2일 메콩 강에서 탈북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박준재란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박준재 할아버지. 당신이 처음으로 헤쳤던 그 루트를 따라 2만 명의 탈북자가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메콩 강에서 당신의 배낭을 건져 올리고 엉엉 울던 막내

부흥이는 얼마 전 컬럼비아대에 입학해 탈북자 최초의 아이비리그생이 됐답니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시죠?”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1.09 19:53

     요즘 ‘국제시장’이란 영화가 주목을 받고,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보통 영화업계의 타겟은 젊은 관객이고, 오감을 자극하는 볼거리입니다.


그래서 보통 한국 상업영화가 10-20대를 겨냥하지만 이 영화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영화에 가깝습니다.


또한 국제시장은 오감을 자극할 만한 볼거리가 없는 그저 우리의 근, 현대사를 주요배경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한 남자의 칠십 평생을


그린 영화입니다. 사실 국제시장이 나오기 이전에 우리의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인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7’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것은 디지털화된 시대가 주지 못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옛 향수를 갈망하는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국제시장은 바로 이러한 옛 향수의 갈망을 만족시킨 영화입니다. 따라서 국제 영화는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우리 아버지의 세대를 대변하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영자(김윤진 역)의 대사 중에 하나인데 “당신 인생인데 왜 당신이 없느냐”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 아버지의 시대에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에는 자기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풍요로움은 저절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세대의 ‘희생’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로 인하여 황폐화된 인간과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죄로 인한 타락한 세상을 구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구속하는 일이 바로 독생자를 내어주심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교회됨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믿는 사람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시스템이나, 재정이 없어도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진정한 십자가의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힘과 권력으로 세상을 제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어줌과 희생의 십자가의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힘은 십자가에서 얻어집니다. 우리가 희생하려 하지 않기에 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희생없는 기독교는 가짜입니다.


희생이 살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살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없으면 안됩니다. 적어도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공동체도 누군가의 희생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전적으로 십자가의 희생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게 조금만 손해가 가해져도 견디질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죽는 시늉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십자가 위에서 진짜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만 희생할 수 있습니다.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보면서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희생의 몫을 감당하고 있는가’를 깊이 묵상해 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1.09 19:49

  2015년 교회의 표어를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6:6)로 삼았습니다.


우리의 삶의 진정한 회복과 교회의 재건은 오직 성령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기회의 균등이 보장된 미국 사회에서 능력을 발휘해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을 말하는 용어였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은 꿈과 소망, 희망을 대변하는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의 이면에는 위험스러운 추정이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절대시하여 무엇이든지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인간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아메리카 드림은 인본주의적인 사고의 총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고들이 우리의 신앙에도 깊이 스며들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인간의 능력을 절대시하는 시대적인 요구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배제된 채 인간이 고안한 전략과 수단, 방법들이 우선되었습니다.


마치 아메리칸 드림의 철학처럼 교회도 주어진 자원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우수한 전략을 세우면 무엇이든지 교회의 부흥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교회의 부흥은 교회가 가진 전략이나, 리더의 질이나, 재정의 넉넉함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인물이 없고, 재정이 부족해도 성령님의 권능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우리의 힘으로 백년에 걸쳐 쌓아 올린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사은품 정도로 취급되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교회가 매끄럽게 효과적으로 성공적으로 여러 가지 활동이 전개되어도,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 생명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의 회복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권능, 즉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복과 교회의 재건은 철저하게 여호와의 영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올 한 해 우리 삼광공동체는 우리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배제하고,


조직을 구성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략을 짜는 데만 급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인 성령을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재주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그분을 의지하고, 진정으로 성령을 구하는 자와 교회 위에 하나님의 능력인 성령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자신 모두가 성령을 능력과 경건의 삶을 기초삼을 때 진정한 회복과 재건을 넘어 부흥의 역사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12.13 18:21

     동양인이자 시각장애인이란 장애를 딛고, 미국 백악관 정책차관보를 지냈던 강영우 박사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그는 2011년 췌장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같은 사형선고를 받고, 2012년 2월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한 두 달 밖에 살 수밖에 없다는 선고에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강박사는 정말로 감동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의사는 수술에 성공하면 2년 정도의 생명 연장을 받을 수 있다고 권했지만 강박사는 이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단지 몇 년을 더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강박사는 자기 인생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어쨋든 저는 신앙인입니다. 다음 세상을 믿는 사람이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레이건 전(前) 대통령의 어머니가 레이건에게 해주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너에게 생긴 나쁜 일이 내일의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죽음이라는 게 사람에게는 가장 나쁜 일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다음에 더 좋은, 가장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될 것예요. 전 그렇게 믿습니다.”


그 후에 신문에 “시한부 삶 강영우 박사 ‘가진 것 다 주고 떠나렵니다’ 미 국제로터리제단에 보은의 25만 달러 기부”란 기사가 실리게 되었습니다.


강박사는 40여년 전인 1972년 국제로터리재단의 장학생으로 뽑혀 피츠버그 대학으로 유학갈 수 있었기에 그 은혜를 잊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은 각각 자신의 이름으로 20만 달라를 내고, 그리고 두 아들에게 각각 2만 5천 달러씩 내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마지막까지 자녀들에게 모범적인 삶의 태도를 가르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피츠버그 대학교의 공동정치학?법학 포럼에 2만 5천달러를 기부하고, 미리 작성한 유언장에는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4억여 원을 기증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언젠가 우리도, 우리의 생애를 정리하는 날이 오겠지만, 매 해마다 반복적으로 한 해를 정리하면서 우리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한 해동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끝 모르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생존하며 살기에 급급한 삶을 살지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2014년의 한 해동안 어떤 삶의 흔적을 남겼는지도 말입니다. 강박사님은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자신의 전부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흘려주고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12.09 12:13

    사랑밭 새벽편지에 올라온 아빠의 시간을 살 수 있을까요?’란 글을 옮겨봅니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 오늘도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 아빠의 퇴근길은 무겁고 힘들기만 합니다.

집에 도착하니 사랑스러운 아들이 환한 얼굴로 아빠를 향해 달려와 안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피곤하고 지친 아빠는 아들을 피해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머쓱해진 아들이 지친 아빠에게 질문합니다.

아빠는 한 시간에 얼마를 버세요?”

아빠는 모든 것이 짜증스럽기만 했지만, 마지못해 대답해 줍니다.

한 시간에 20달러를 번단다.”

아빠의 대답에 실망한 아이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아빠에게 부탁합니다.

아빠, 저에게 10달러만 빌려 주세요.”

아빠는 돈이 필요한 이유가 전혀 궁금하지 않았고, 가뜩이나 피곤한 자신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아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맙니다. 아이는 그렇게 힘없이 방으로 돌아가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아들에게 심하게 화를 낸 것이 맘에 걸리는 아빠,

아들의 방문을 살며시 열어 봅니다.

미안함에 아들을 다독여 주던 아빠는 아들이 필요하다던 10달러를 줍니다.

아들은 무척 기뻐하며,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꺼내더니 돈을 세어 봅니다.

“1달러, 2달러, 3달러..”

그 모습을 본 아빠는 돈이 있으면서 왜 돈을 빌려 달라고 했냐?”면서 아들에게 또 화를 냅니다.

아들은 돈이 부족했다며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아빠, 이제 20달러가 있어요. 아빠의 시간을 한 시간만 살 수 있을까요?”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최고의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합니다.


그런데 시간을 투자할 때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한 아버지가 자녀가 태어난 날부터 매일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여덟 살쯤 되었을 때, 어느 날 난 절대로 결혼 안할 거에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갑작스런 아이의 말에 놀란 아버지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결혼하면 아빠가 밤마다 기도해주지 못하잖아요, 난 아빠가 매일 기도해주는 것이 최고로 행복해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 아이가 혼자 기도하는 것을 아버지가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커서 아빠같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자녀의 기도를 들은 아버지는 그날부터 새로운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아들이 닮을 만한 가치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금부터라도 자녀에게 기도의 시간을 선물해 보십시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11.28 16:52

    교회는 절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절기를 기억하기 위해 교회력을 만들었습니다.


보통 교회절기하면 우리는 ‘성탄절’ 혹은 ‘부활절’, ‘추수감사절’ 정도만 알고 있는데, 교회력은 ‘대림절’에서 시작합니다.


대림절은 성탄절 4주전에 시작합니다. 대림절 4주가 지난 이후 아기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이 지난 이후에 ‘주현절’이 있습니다. 주현절은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1월 6일부터 사순절까지의 절기입니다.


그리고 ‘사순절’이 있습니다. 사순절에 고난주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절’이 있고, ‘오순절’(성령강림절)이 있습니다.


성령강림주일 다음 주일이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이 가장 긴데, 거의 6개월 정도 지속됩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 ‘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절기는 대림절에서 시작하여 추수감사주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번 주는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대림절’(待臨節)은 ‘기다릴 대’(待), ‘임할 림’(臨) 자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영어로는 대림절을 ‘Advent’라고 하는데 ‘오다’라는 뜻의 ‘Adventus’에서 유래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마라나타’라는 아람어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마라나타를 어떻게 띄어 읽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우선 ‘마란 아타’(Maran atha)라고 읽으면, ‘우리의 주님께서 오셨습니다’(Our Lord, has come)란 뜻이 됩니다.


반면, ‘마란아 타’(Marana tha)라고 읽으면 ‘오, 주님, 오시옵소서’(O Lord, Come)란 뜻이 됩니다. 따라서 ‘마란 아타’는 ‘오신 주님’을 고백하는 것이고,


‘마란아 타’는 ‘오실 주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는 ‘마란 아타’와 ‘마란아 타’ 사이에 사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대림절을 보내는 성도의 자세는 오셨던 주님을 고백하면서 그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대림절은 새해에 대한 기다림의 절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대림절을 통해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11.22 17:20

    얼마 전에 읽은 글 중에 깊이 묵상해볼 글이 있어서 그대로 옮겨봅니다.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40일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루를 남겨 놓은 39일째 되는 날 젊은 제자 하나가 맛있는 스프 냄새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함께 금식을 하던 제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 젊은 제자를 노려보았습니다.


그 눈길 속에는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영혼을 향한 애처로움이 아니라 분노에 찬 정죄의 따가운 시선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제자들은 유혹에 넘어간 젊은 제자를 엄하게 꾸짖어주기를 바라며 스승, 프란체스코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프란체스코는 말없이 수저를 집어 들더니 젊은 제자가 먹었던 스프를 천천히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경악의 눈길로 스승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금식을 하며 기도를 드리는 것은 모두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그분의 성품을 본받아 서로가 서로를 참으며

사랑하며 아끼자는 것입니다. 저 젊은이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스프를 떠먹은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를 정죄하고 배척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지금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굶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는 실컷 먹고 사랑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경건의 폭력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39일 동안 무사히 금식을 마친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에게서 그들의 엄격한 경건과 돈독한 신앙이 오히려 형제를 짓밟고 자신들의 영성마저


망가트리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율법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고 다른 이들을 욕하고 질타하면서 그보다 더 큰 사랑의 계명을 어기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오늘 우리의 모습 속에서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서로 긍휼하게 여기고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꾸짖고 정죄하기보다는 잘못을 깨닫고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내하면서 기다려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경건은 겸손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경건과 믿음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타와 거부가 될 것이며 무엇보다 폭력이 되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상하게 하는


끔찍한 범죄가 될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11.21 16:57

    전남 영광의 한 자락에서 생명공동체를 일구고 살아가는 생명 운동가 황대권씨가 어느 대학 강연에서 밝히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서울대 농과 대학 시절 그는 격변기의 한국 정치 속에서 피끓는 젊은이의 한 사람으로서 마냥 도서관에서 공부만 할 수는 없었기에 사회변혁을 외치고 불의에


맞섰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력 때문에 후일 30세의 미국유학생이 이유도 모른 채 간첩단 사건의 주동자가 되어 투옥된 것입니다.


그는 억울하였지만 이것을 극복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친구도 가족도 떠나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매일 매일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삭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다독이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마음도 안정되고 세상을 향한 분노가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교도소의 콘크리트 틈 사이로 잡초 하나가 자라난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그는 그 잡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구나 너의 생명과 나의 생명이 같구나”


그냥 하찮게 여길 수도 있는 잡초 속에서 그는 생명이란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잡초 하나를 통해서 생명의 경외심을 느끼고 그것을 살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생명의 소중한 위대함을 경험하고 나니 이전에 그가 목숨처럼 여겼던 신념이란 것이 너무나 작게 여겨지더랍니다.


그것이 사회주의건 민주주의건 좌파건 우파건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이데올로기가 생명 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큰 깨달음 앞에서는


다 쓰레기처럼 여겨졌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후로 그는 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늘날 좌우이념이 더욱 극렬하게 대비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념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진정한 생명운동가이시기 그리스도의 후예들이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11.07 18:44

     가을은 감사의 계절입니다. 오곡백과(五穀百果)의 결실을 보면서, 결실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한해의 결실은 우리가 흘린 땀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결실을 맺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맺어진 결실, 즉 삶의 결과물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마음은 당연한 인간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감사는「그리 아니하실지라도(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지향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는 풀무불 앞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고백했던 신앙의 고백입니다.(단3:18) 이것은 결과와 상관없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항상 우리는 결과에 맞물린 감사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사는 ‘무엇 때문에’의 감사입니다.


그러나 깊은 감사는 결과와 상관없는「그리 아니하실지라도(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성취되지 않을 때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하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던 소원대로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그럼에도 불구하고」감사할 때 그것이 진정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감사를 더 기쁘게 받으십니다. 더불어 감사가 미래를 여는 기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현재에 어떠한 결실도 없는 빈광주리와 같은 삶이라 하더라도, 감사를 잊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장차 빈광주리를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감사는 미래를 위한 저축성 기도와 같으며, 미래에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장하는 하늘 담보물(擔保物)인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여러분의 삶에 바라던 것을 얻지 못했더라도, 감사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하나님께서 풍성한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감사는 범사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것은 일상의 평범함에 대한 감사입니다.


매순간 평범한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누리는 복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망각한채로 삽니다.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처럼 감사한 것이 없습니다.


보고 듣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 산책하는 것, 가족이 함께 자유롭게 외식하는 것, 건강하게 자고 일어날 수 있는 것,


모든 일상이 감사의 내용인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이 다가옵니다. 한 주 동안 여러분의 감사의 내용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10.31 16:23

    다음 내용은 前 경북대 총장 박찬석님 회고 중에서 홍사범씨가 옮긴 글입니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으로,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우리 집 역시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아버지는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 보내셨다.


 그러나 대구 중학을 다니면서 공부하기 싫었던 나는 1학년 8반 68명 중 68등이라는 성적으로 결국 꼴찌를 했다.


어린 마음에도 부끄러운 성적표 가지고 고향에 가서 부모님께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에서 68등을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으셨기 때문에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시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 간 내가 집으로 돌아오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했더냐?”라고 물어보셨다.


 “앞으로 더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베.” “자네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고 계셨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힐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울컥하는 마음으로 “아부지...”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죄드리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 말을 시작하려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고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목회의 경험이 더해질수록, 신앙공동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참고 기다리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서로를 향해 부족한 면이 있어도,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 영적 가족공동체인 교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를 향해 하나님 아버지가 참고 기다리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 대한예수교 장로회 삼광교회 2026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35길 18

로그인 PC버젼 맨위로

202003232020040320260416 202209072022091220260416 202211202026123120260416

 

4월 12일 구역공과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

이창을 닫습니다
202108072021080820260416 202212312026123120260416

 

온라인 헌금 안내
농협 301-0170-4479-41 삼광교회
보내시는 분 성함+헌금내역
예)홍길동십일조, 홍길동감사 등

4/12 헌금자 명단 확인하러 가기

이창을 닫습니다
202004042024123120260416 202012092020122820260416 202102132021021420260416 202212032026123120260416

 

4월12일 주일예배

주보 바로가기

이창을 닫습니다
2024010120241231202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