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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9 16:38

   마태복음 5:5에 보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합니다. 성경은 온유한 자가 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팔복은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수 있고, 애통하며 눈물 흘린 자가 온유해지는데, 그 이유는 눈물을 뿌리며 회개할 때

 

우리의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옥토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애통의 눈물은 우리 내면의 모든 교만의 찌꺼기들과 죄의 오물들을 다 씻어내고 정결하게 합니다.

 

따라서 회개와 눈물의 애통함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기경하여 옥토같은 온유한 땅이 되게 합니다.

 

그러면 왜 온유함이 복입니까? 옥토같은 온유한 심령이 말씀의 결실을 맺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의 마음에 구원과 말씀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온유한 자의 마음은 열매맺는 땅이 되므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의미는 부동산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열매맺는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유함이라 무엇입니까? 온유는 사전적으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 온유는 자기를 비워 종이되는 섬김을 의미합니다. 또한 온유는 통제된 힘입니다.

 

온유는 헬라어로 ‘프라오테스’인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온유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온유는 이 두 가지를 합한 의미인데, 곧 예수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되심의 무한함을 비워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 앞에 자신을 통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인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애통하는 자리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애통하고 눈물은 흘리는데, 적극적인 온유함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애통함은 자신을 비워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말씀의 열매를 맺는 온유한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온유한 자가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주인인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5.26 18:00

    잠시 미국에 살면서 미국사람에게 배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작은 것이라도 칭찬하는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은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험담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을 매우 나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인지 작은 것에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두 번째는 인사하며 웃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인사하고 웃습니다.

 

별일 아닌 것 같은데도 박장대소하며 웃곤 합니다. 반면 우리 민족은 눈물이 많은 민족입니다.

 

그 이유는 오랜 동안 굴곡의 역사를 살아오다 보니, 눈물이 끊어질 날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은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우는 민족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새소리를 들으면 “새가 노래한다”라고 말하는데, 우리 민족은 “새가 운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도 꼭 눈물을 흘려야 은혜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눈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56:8).

 

하나님의 자녀가 흘리는 눈물은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병에 담아 두겠다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도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마5:4)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애통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영적빈곤을 깨닫고 자신이 철저하게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만이 애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애통함은 심령이 가난함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할 때, 즉 자신이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가난함,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함에 대한 인식이 하나님을 향한 애통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저는 삼광교회가 이 애통함이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이 애통함이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절박함과 가슴을 치고 울부짖는 기도가 사라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이 애통함의 복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입니다. 요즘 새벽을 깨워 기도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5.19 15:01

  복음을 간추려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모든 인간에게는 고귀한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타락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저지르는 성질을 타고 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에 빠져있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은행을 털어본 적도 없고,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자신을 제대로 본다면 우리 자신 속에 얼마나 많은 죄의 모습들이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은 모두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모두 용서가 필요하며 그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를 보내셔서, 우리를 죄를 위해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사해질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소유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행위로 그분은 죽음을 물리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에게 쉬운 삶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새로운 삶은 영원까지 계속됩니다. 땅 위에서 우리의 시간은 짧지만 영원은 광대합니다.

 

“나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끝없이 지속되리라는 확신 또한 가질 수 있습니다. 철학자인 폴 틸리히가 인간은 항상 세 가지 공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의미없음에 대한 공포, 둘째는 죽음에 대한 공포, 셋째는 죄에 대한 공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공포를 물리치시고, 이것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삶의 의미없음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죄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될 분이십니다.

 

바라옵기는 참 진리되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시고, 인생에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죽음과 죄로의 공포로부터 자유케 되어지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4.26 16:21

    하루는 24시간이고 일주일은 168시간이며, 한 달은 720시간 그리고 1년은 8760시간입니다.


하루 10분쯤 낭비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이와 같이 무심코 낭비한 10분이 일년 동안 쌓이면 3600분이고, 60시간이며,


이틀하고도 반나절이나 됩니다. 하루에 10분씩 사용해서 기도를 한다면 60시간 동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10분씩 사용하여 일년 동안 책을 읽는다면 최소한 5권의 정도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10분의 시간이 아무 것도 아닌게 아닙니다. 자신이 꿈꾸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루 24시간 중 일부를 투자하면 됩니다.


하루에 한 시간이면 365시간이 되고, 하루에 세 시간이면 1095시간이나 됩니다. 하루에 세 시간씩 10년의 시간을 보내면 1만 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면 지금보다 10년 후의 삶은 확연하게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자신이 꿈꾸는 삶에 가까이 가 있을 것입니다.


현재 자신이 쓰는 24시간의 시간 사용을 보면 자신의 미래가 보입니다. 10년 그리고 20년 후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는 말은 핑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무리 바빠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위하여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이런 무명의 격언이 있습니다.


 “미래의 당신 자신이 감사할 무엇인가를 오늘 하라!” 오늘 바로 지금 미래에 내가 감사하고 기뻐할 일에 시간을 투자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한 차원 더 높은 시간투자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영원을 위해 우리의 현재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여러분의 소중한 현재의 시간을 가정(가족들)과 교회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투자해 보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미래에 감사하고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4.22 15:13

    우리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내가 누군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 때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인간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의미이며, 인생의 성공이 이것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우선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창2:7) 둘째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을 주셨습니다.(창2:7)

 

셋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셨습니다.(창1:27) 넷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대리 통치자로 만드셨습니다.(창2:28)

 

다섯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창1:27) 여섯째로,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창2:17)

 

일곱째로,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창3:6) 여덟째로,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셨습니다.(창1:29-30)

 

아홉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무척이나 기뻐하셨습니다.(창1:31) 열 번째로,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교제하시기 위해 지으셨습니다.(창5:22)

 

이처럼 성경은 인간의 존재를 분명하게 규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 위에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바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 위에 여러분의 삶을 지어갈 때 여러분의 인생은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존재하는 이유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첫째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둘째로,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셋째로,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넷째로,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다섯째로,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을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섯째로,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으로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일곱째로,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덟째로,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여러분의 삶이 진정으로 참다운 인생의 목적을 따라 사시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4.08 14:34

    매주 아내와 함께 한 두 번씩 오르는 안산의 두레 길에서 성큼 다가온 봄의 기운을 느낍니다.

 

안산 둘레길 주변으로 나무마다 연초록의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이맘 때쯤 하나님께서 자연에게 주신 연초록의 색상이 너무나 아름답기 시작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생명력을 그 속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신기하게도 겨울내 모두 죽은 듯 보이던 나무들마다 자신들의 생명력을 입증하듯 새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마다 생명의 신비를 넘어 부활의 신비를 묵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마도 하나님께서 부활의 역사를 우리의 봄에 맞추시고, 만물이 노래하는 부활의 의미를 묵상하라고 하신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새싹이 움트는 모습 속에서 죽음을 깨고 일어서신 주님의 모습이 비추어집니다.

 

이것을 일찍이 먼저 묵상했던 시인 구상은 ‘부활송’이라는 시에서 부활이 지닌 여러 가지 함의를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죽어 썩은 것 같던 매화의 옛 등걸에 승리의 화환인 듯 꽃이 눈부시다

당신 안에 생명을 둔 만물이 저렇게 죽어도 죽지 않고 또 다시 소생하고 변신함을 보느니

당신이 몸소 부활로 증거한 우리의 부활이야 의심할 바 있으랴”

 

이 시에서 시인은 겨우내 얼어붙은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던 나무들이 봄의 생명력에 힘입어 저마다 움을 띄우는 것을 보면서

 

부활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상명 교수는 이것을 자연계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는 생명의 크고 작은 부활의 신비에

 

무감각해 버린 마음으로는 이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손길을 어찌 느낄 수 있겠는가!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교수가 이야기하듯이 자연의 작은 창조의 한 부분을 통해 부활의 신비를 깨닫는 이들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의 아침입니다. 말씀의 산책과 더불어 시간을 내서 자연을 거닐어 보며, 부활의 증거를 몸소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4.08 14:30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누구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롬3:10)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정확한 의미의 죄는 무엇입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인간의 바른 관계가 존재하였습니다. 즉 인간은 원래 자기 자리가 있었습니다.

 

첫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둘째,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아니라 유한한 존재입니다.

 

셋째,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인 동시에 하나님을 의존하는(말씀대로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정체성을 가장 잘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선악과란 나무를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선악과란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주시고 따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선악과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임을 증명합니다.

 

둘째,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존재로써 자기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이탈하였습니다.

 

사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바로 그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하였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사탄의 유혹에 스스로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여기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하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교만 혹은 이기심, 자기주장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죄의 근원(뿌리)은 인간의 욕심, 교만, 이기심, 자기주장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과의 바르지 못한 관계(깨어진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첫째,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리(깨어짐)시켰습니다.(사59:2)

 

둘째, 죄는 온갖 형태의 악과 고난 그리고 질병을 발생하게 만들었습니다.(롬1:29-31)

 

셋째, 죄는 인간을 사망으로 인도하였습니다.(롬5:12)

 

그런데 인간의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히9:27)

 

따라서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시킨 죄를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값을 치루어 주셨습니다.

 

인간의 죄값을 치루신 곳이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한 주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는 고난주간입니다.

 

한 주간 특별새벽기도의 자리를 통해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2.22 16:51

     성경은 우리 모두는 두 가지 인생 중에 하나의 인생을 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땅에 보물을 쌓아두려는 인생’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려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에 보물을 쌓는 삶을 포기하고, 하늘에 보물들을 쌓는 삶을 살도록 명령합니다.


그 이유는 땅에 보물을 쌓는 삶의 허무함과 무가치함 때문입니다.


성경은 땅의 보물들은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마6:19)


 “좀과 동록이 해한다”는 것은 ‘낡게 되고, 사라지게 되고,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땅의 보물들은 빼앗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 쌓아둔 보물 가운데 낡지 않는 것이 없고, 사라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도둑은 바로 ‘죽음’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우리가 이 땅에 쌓아두었던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성경은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다’고 말씀합니다.(마6:20)


도적인 죽음조차도, 하늘에 쌓아둔 보물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하늘의 보물은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마6:20의 하늘은 바로 하나님의 거처인 천국을 의미합니다.


이 천국은 하나님의 장막이며 또한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처소입니다. 따라서 하늘에 보화를 쌓은 삶이란 한마디로 천국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천국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천국을 준비하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온전함을 이루는 일(마5:48)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구원의 삶(마6:33)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보물들이 있는 그 본향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된 성도는 세상에 보물을 쌓은 삶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을 목적으로 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2.01 14:45

    지난 10일, 사범대를 졸업한 뒤 부인과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강모씨가 뺑소니를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고 피해자 강씨는 임신 7개월된 아내의 임용고시 합격을 돕기 위해 화물차 기사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사고 당일도 새벽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특히 강씨의 아내의 뱃속에는 새별이라는 태명의 7개월된 새새명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날 아내가 좋아하던


크림빵을 사들고 오던 중이었습니다. 예비 아빠 강씨가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남긴 말은 “좋아하는 케이크 대신 크림빵을 샀는데 미안하다.


가진 것 없어도 우리 새별이에게 만큼은 열심히 사는 훌륭한 부모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건이 전해지자 수많은 공분한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수사에 동참하여 결정적인 제보가 제공되면서,


드디어 피의자 허씨가 아내의 권유로 자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허씨가 자수한 그 날 밤, 강모씨의 아버지 태호씨가 피의자가 자수한 흥덕경찰서를 찾아 기자들을 향해 건넨 첫마디가 의외였습니다.


 “잘 선택했다. 자수한 사람을 위로해주러 왔다” 강씨의 아버지는 허씨가 자수한 것에 대해 “가족이 너무나 고마워했다,


잡히지 말고 자수하기를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며 언론을 통해 자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식구들이 모두 박수를 보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취재진의 질문에 차분히 대답하던 강씨는 오히려 위로받아야 할 자신보다 아들을 사지로 내몬 허씨를 더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말투에서도 피해자 가족으로서의 원망이나 슬픔보다는 오히려 허씨에 대한 진심어린 위로를 건넸다고 합니다.


아버지 강씨는 “원망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 사람도 한 가정의 가장일텐데,, 우리 애는 땅속에 있지만, 그 사람은 이제 고통의 시작”이라고


허씨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이어 “가족도 있을 텐데 그 사람은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거듭 말한 뒤 “정말 (자수를)잘 선택했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강씨는 출산을 3개월여 앞두고 창졸간에 홀로 된 며느리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도 드러내며 “우리 며느리는 마음이 단단해서 (피의자)


가족도 보듬아 줄 것으로 믿는다”고 토닥이듯이 말했다고 합니다.


참 신앙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뺑소니친 원수까지도 품는 아버지 강씨의 신앙 앞에서 여러분은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1.25 14:27

    첫째, 제직은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는 동역기관입니다.


제직은 단순히 받아놓고 묵혀두는 명함이 아닙니다. 제직으로 부른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동역하라고 세우신 것입니다.


제직은 신분이나 계급이 아닙니다. 제직은 말 그대로 일을 위한 직분의 구분일 뿐입니다.


따라서 제직은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의 일은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성령없이 자신의 열심과 열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을 의지하지 아니하는 모든 열심은 자기 의가 되기 쉽습니다. 성령은 하나님 나라의 일의 주체이십니다.


따라서 교회의 사역은 성령없는 사역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셋째, 제직은 마음을 같이하고, 하나됨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분열됨을 막고, 하나됨을 깨뜨리는 사탄의 권세를 물리쳐서 늘 연합과 순결을 유지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마음을 같이하는 것은 단순히 마음이나 감정의 하나됨이 아니라, 비전과 철학의 하나됨, 믿음의 고백과 성령의 하나됨,


복음의 하나됨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직은 교회의 철학과 비전을 숙지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제직은 기도하는 자입니다.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모두 기도의 현장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의 역사가 새롭게 태동되는 산실입니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는 인간의 자생적인 힘으로 만들어낼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기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만 되어진다는 것에 대한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또한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공동체는 마음을 같이하고 뜻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는 하나님을 바꾸는 시간이 아니라 내 자신이 바뀌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불어 함께 기도할 때 서로 다른 생각, 다른 마음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기도로 일생을 시작해서 기도로 마무리하셨습니다.


바라 옵기는 임명받은 모든 제직들은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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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구역공과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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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헌금 안내
농협 301-0170-4479-41 삼광교회
보내시는 분 성함+헌금내역
예)홍길동십일조, 홍길동감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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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2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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