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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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9 20:20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성장주기’가 있습니다. 성장주기란 ‘성장기’를 지나 ‘정체기’를 거쳐 ‘퇴보기’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는 정체기를 거쳐서 퇴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도 유기적 생명체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쇠퇴기를 넘어서 새로운 성장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까? 우선 우리는 ‘무엇이 교회성장을 이루는가’를 재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미국교회 성장연구소의 대표인 찰스 안 박사는 “교회성장의 중요한 열쇠는 ‘불신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처럼 주님은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으므로 교회의 목표도 그러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장기는 전도와 선교 활동을 확장해 감으로써 불신자에게 관심이 높은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 정체기에 이르면 교회는 관료화, 제도화가 되면서 정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퇴보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생명체는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는 일반적인 원리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예수님의 생명의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에는 새로운 성장주기가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명을 되찾을 때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복음으로 돌아가는 운동입니다.


철저하게 인본주의적인 신앙을 벗어버리고 복음으로 무장하는 일입니다. 또한 교회가 비신자들에게 문을 여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적합한 전도전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먼저 믿음 사람들이 자신의 혈육인 ‘가족과 친척’, 그리고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친구와 동료’들을 전도하는 방법입니다.


챨스 안은 이것을 대가족 전도법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 예를 들어 삭개오, 로마 백부장, 빌립보 간수, 그리스보 등도 그들의 가족들에게 먼저 전도를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 시대에도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 새생명축제가 우리의 혈육과 주변의 친구와 동료들을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생명축제는 이와 같이 ‘대가족 전도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새생명축제를 통해 우리의 가까운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교회에 정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길 소원해 봅니다.

 

글쓴이 담임 목사 하의용

14.09.13 16:59

     요즘 셀교회(Cell Church)가 주창하는 바와 같이 교회는 두 날개가 중요합니다.


교회의 두 날개는 시스템적으로 보자면 '예배'와 '소그룹'(구역)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초월하심(권능, 은혜 등)을 경험해야 하며,


더불어 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내재하심,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따라서 구역은 단순한 모임이나 관리조직이 아니라 천국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본 단위입니다.


쉽게 말하면 영적 가족단위인 것입니다. 주보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구역모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구역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장은 예배로만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구역을 통한 돌봄과 교제를 통해서 신앙의 성장은 이루어집니다.


구역은 단지 일주일에 한번 모이는 주간모임이 아니라 서로 세우고 돌보는 상호돌봄과 세움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이 예배에만 초점을 두다 보니까 구역의 모임은 선택 혹은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역은 실제적인 교제의 장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함께 서로를 위해 봉사하고, 함께 서로의 짐을 지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신앙은 참된 교제(코이노니아)를 경험하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교제는 함께 모여서 웃고 이야기하는 단순한 교제가 아니라 공동체성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서는 공동체성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본질은 드림입니다.


오직 구역을 통해서만 공동체성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역은 신앙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입니다.


어떤 한인이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가 아닌 현지인 교회(미국인들이 출석하는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분이 첫 공식적인 구역(소그룹)모임에 참여하고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인들이 한국에서 온 낯선 구역원을 위해 첫 모임에 한국음식을 준비하고,


한국 놀이문화를 배워서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그 코쟁이들이 자신의 구역원이 된 한국사람을 위해 김치까지 담궈 놓았으니 감동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단편적으로 예를 들면 구역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진정한 영적 가족됨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천국의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소그룹 모임인 구역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있어 한쪽 날개가 구역임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구역 모임이 더욱 활성화되길 소원합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09.05 17:55

    지난 주부터 식당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한번은 디자인 일을 하시는 분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자신은 어떤 작업을 할 때 그 작업에 컨셉과 주제 혹은 스토리를 담으려고 한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철학적이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뜩 우리가 식당을 리모델링하는 것을 단지 기능적이고, 편리함에만 목적을 두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혹은 재정도 없는데, 왜 식당에 돈을 쓰는가?라는 비용의 문제로만 접근하지 않는가? 라는 염려가 생겼습니다.


물론 저희 중에는 그렇게 접근하는 분은 안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삼광교회의 목회철학 가운데 하나는 천국과 같은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 역시 설교에도 ‘천국과 같은 교회를 만들자’란 표현을 종종 사용하곤 하였습니다. 교회는 천국을 경험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배도, 교제도, 교회의 모든 형식과 내용과 심지어 건물까지도 천국의 모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희 교회의 철학입니다.


식당을 리모델링하는 것은 단순히 ‘편리함’과 ‘새로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스토리가 있습니다.


교회의 만남은 천국의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성경적인 교제의 핵심은 식탁교제입니다.


이러한 식탁교제가 행복하게 이루어지는 장소가 바로 식당입니다.


따라서 이번 식당 리모델링의 컨셉(concept)은 천국(heaven)의 교제(Koinonia)입니다.


천국에서 누리는 식탁교제처럼 행복하고, 쉼을 얻고, 믿음의 식구가 함께 교제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성도의 교제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 철학에 근거하여 식당을 새롭게 리모델링하고자 합니다. 더욱이 식당은 우리가 예배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편리함과 비용의 문제로 접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번 기회가 여러분의 교회 사랑과 헌신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바라 옵기는 여러분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글쓴이 하의용 목사

14.09.03 13:16

   지난 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더 큰 과제에 짊어진 듯 한 느낌이 듭니다.


한반도 전체가 프란치스코란 한 인물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애정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따뜻한 미소와 씁쓸함이 교차됩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아픔에 직면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교황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되기에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낮은 자리에서 낮은 자와 함께 하는 삶의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황을 신격화하고, 심지어 교황의 무오설(오류가없음)을 주장하는 천주교에서의 교황은


이미 낮은 자리 혹은 낮은 자와 함께 하셨던 예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에 천주교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으로 보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일 진정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한다면 교황이란 자리를 인정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드로처럼 “왜 사람을 주목하느냐”고 담대히 외칠 줄 알아야 하고, 광야의 소리로 살다가 사라졌던 세례요한과 같이


교황청을 떠나 광야 즉 소외된 자들의 삶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목소리 가운데 하나가 권력의 집중화입니다.


이단의 가장 큰 문제가 교주의 신격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주교의 교황의 신격화가 이단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세상 사람들은 천주교의 교황의 신격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무오나, 인간의 신격화는 철저히 성경적인 복음과 다른 것입니다.


특히 사제들은 만인제사장의 예수님의 복음과는 달리 평신도와 구별되는 특별계급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외에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사제들에게 인간의 죄를 사하는 권세를 부여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마리아 역시 죄없이 태어났으며 평생 동정녀로 살았다고 주장하고 마리아 승천설까지 주장합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구원은 공로나 공덕으로 얻을 수 있고, 사제들이나 성례나 마리아나 천국의 성도들의 중재의 수단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엄밀하게 거짓 복음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복음을 뒤로 한 채 사랑과 정의만을 외친다면 이것은 가장 교묘한


사탄의 전술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개신교는 왜 한국사회가 이토록 교황에게 환호하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우리 한국교회가 새롭게 환골탈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09.03 13:13

    이찬수 목사님의 ‘처음 마음’이란 책에 담긴 내용을 인용해 보고자 한다.


얼마 전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그의 부인 리설주가 묘향산 기슭에 있는 소년단 야영소를 방문했을 대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 속의 아이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보였다. 분명 감격에 겨워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 사진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들이 느끼는 저 행복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그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눈이 가려진 행복함이다.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호도된 거짓된 행복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TV에서 서울 시민의 행복도 조사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주었다.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돈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40.6퍼센트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돈이 얼마나 있으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에는 가장 많은 사람이 10억에서 50억 사이라고 응답했다. 그 수치가 39.25퍼센트다.


그런데 막상 전문가들이 행복과 소득과의 상관간계를 조사해 보니, 월수입 400만원까지는 행복도가 수입의 증가와 비례하여 상승하지만,


400만원 이상 부터는 수입이 증가해도 더 이상 행복도가 상승하지 않았다.


실제로 월평균 소득이 430원인 사람과 680만원인 사람과의 소득과 행복 점수 차이를 조사한 결과 두 사람 사이의 행복도에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이 결과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들 역시 북한의 아이들처럼 거짓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좀 더 돈을 가지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거짓에 눈이 가리워진 채 숨가쁘게 살아가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가지면 행복하리라는 거짓된 신화 때문에, 정작 진정한 행복을 놓치면서 살아간다.


사랑하는 가족,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잃거나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북한의 아이들이나 우리 시대의 현대인들의 공통점이 모두 진정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이면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던 처음 마음이 있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행복의 근원이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늘 이 처음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하반기는 이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해 본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09.03 13:11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원문에서 ‘심령’이라는 말은 ‘프뉴마’, ‘영’이란 말로 되어 있습니다. 즉 심령의 가난은 ‘영적인 가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의 쓰인 ‘가난’은 헬라어로 ‘프토코스’입니다. 이 단어는 철저하게 가난하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한 철저하게 비어있는 상태 ,빈 호주머니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것은 보통 가난, 혹은 보편적인 가난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상대적인 가난이 아닙니다. 어디 변두리에 사는 극빈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가난은 철저한 가난, 절대적인 가난, 더 이상 가난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의 가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하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은혜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영적으로 철저하게 가난하게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복은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입니까? 여기서 ‘복’은 원문으로는 ‘마카리오스’입니다.


이 말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로 해석되는 단어입니다. 첫째는 신의 존재란 말입니다.


즉 신이 존재하는 곳에 복이 있을 수 있고, 행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없는 복 혹은 행복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계실 때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인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함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따라서 심령이 가난함이 진정한 복인 것입니다. 둘째로 ‘마카리오스’란 말은 ‘행복한 섬’이란 뜻입니다.


고통이 없는 섬, 슬픔이 없는 섬, 배고픔이 없는 섬, 괴로움이 사라진 기쁨과 즐거움만이 있는 섬입니다. 이 섬이 바로 천국입니다.


따라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바로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섬에 거하는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심령이 가난함이 복인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09.03 13:09

   우리 인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일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무한 질주하는 인생과 분명한 이유를 갖고 달려가는 인생은 다릅니다.


그 차이 중에 하나가 먼저 살아야할 이유가 있다면 그 인생은 시간을 지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엡5장 17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책임 있는 세월이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시간낭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뚜렷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 낭비 가운데 그릇된 목표에 정열을 쏟아 시간을 쓴다면 이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즉 올바른 목표에 상반되는 모든 활동들 예를 들면 분명치 못한 목표, 저속한 목표, 우선순위의 혼동과 같은 삶은 시간낭비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시간을 아끼는 가장 현명한 지혜는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담아두신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의미있는 삶을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받고 사랑하는 존재, 즉 사랑의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의미있게 만들어 줍니다.


가정을 이룬 아버지가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며 살았다면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일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땅에서 증인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삶은 진정으로 의미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의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09.03 13:07

  지난 주에 이어 전병식 목사님이 쓴 ‘평범한 날들의 축복’이라는 책을 읽다가 함께 나누고 싶은 글이 있어 인용해 봅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송나라 사람 석혜홍이 황산곡의 말을 빌려 냉재야화(冷齋夜話)에서 쓴 말입니다.


 “뼈를 바꾸고 태를 빼앗는다”는 뜻에서 ‘선인들의 시나 문장의 뜻을 살리되 그 짜임새와 수법을 먼저 것보다 잘 되게 꾸며서 자기 나름의 새로움을


보태 자기 작품으로 삼는 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원래의 뜻과 의의를 버리지 않고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그 변화를 환골탈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개신교의 종교개혁은 천주교의 타락한 나쁜 것은 버리되 좋은 모습은 그대로 이어 더 나은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과 했던 환골탈태의


노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니 이제 또 개신교가 환골탈태해야 할 시기가 된 듯 합니다.


잘못되어져 가고 있는 교회, 잘못 믿고 있는 교인들이 변화되어서, 잘못에 저항하는 프로테스탄트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이미 지난 듯이


보입니다. 무슨 변화가 아니라 억지가 앞서고 큰 목소리가 이기는 것이 아닌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교회로 돌아가기만 해도 될 것입니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우리를 만드셨던 그 본래의 뜻과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더하여 예수님께서 주신 지상명령,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놓치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환골탈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먼저, 나 자신(自身)이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스탕달은 인간을 연구하는데 자기 자신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남의 잘못을 가리고, 남의 변화를 기대하기 전에 나는 먼저 바꾸고 돌려놓는 개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환골탈태의 마음으로 오늘 내 신앙의 모습 속에서 변화되어야할 모습이 없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09.03 13:05

    전병식 목사님이 쓴 ‘평범한 날들의 축복’이라는 책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해봅니다.


논어 옹야 편에 “고불고, 고재, 고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가 어느 날 제자들 하고 술을 한잔 마시게 된 모양입니다.


그날 술을 따라 마시던 잔이 ‘고’라고 하는 술잔이었는데, ‘고’라고 하는 술잔은 입술을 대는 주둥이 부분이 4각으로 모나게 되어 있는 술잔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양을 만들기가 쉽지 않으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주둥이 부분 전체를 둥그렇게 만들게 되었든가 봅니다.


그래서 공자가 술잔을 기울이다가 원래 각진 모양이었던 ‘고’ 술잔이 둥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한마디 한 것입니다.


‘고가, 고가 아니면 그게 고이겠는가? 고이겠는가!’


사실 공자의 이 말은 원래 갖추어야 할 모양과는 다르게 변질되어 버린 당시의 정치 세태를 풍자해서 한마디 한 것입니다.


요즘 정치가 그게 정치냐? 정치라는게 각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정치는 각이 안 나오는구나! 마치 ‘고’ 술잔이 각이 없어지고


둥글어진 것처럼 요즘 정치가 각이 없이, 원칙이 없이 그저 둥글어졌구나, 그래 요즘 정치가 정치더냐?


요즘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이더냐! 라는 한탄입니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의 정치 세태 아니 우리의 현실의 작태에 꼭 맞는 말인 듯 합니다.


제나라의 임금인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합니다.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오늘 우리 현실의 문제는 각자 ‘다움’의 길을 걷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논어 이인 편에서 이런 ‘다움’의 길을 그 냥 ‘도’(道)라고 하지 않고 ‘도’ 자 앞에 바로 ‘그 기’(基) 자를 붙여서 ‘기도’(基道)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그냥 ‘길’이 아니라 ‘그 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즉 성경이 제시하는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다움’은 바로 말씀이 제시하는 ‘그 길’을 걸을 때에 성취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목사다움의 길을 걷고 있는지, 성도다움의 길을 걷고 있는지, 정치세태를 비판하기 이전에 저를 먼저 반성해 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4.09.03 12:31

    얼마 전 저희 사택 뒷마당에 어떤 분이 장미 화분 하나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장미는 약 전세계에 100여종이 분포되어 있고, 대다수의 원산지가 아시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미 꽃은 붉은 색, 분홍색, 노란색, 흰색 등이지만, 최근 기사를 보니 한 농업인이 여러 가지 색으로 변하는 장미를 개발하여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두, 보라, 야광 장미뿐만 아니라 꽃잎마다 다른 색으로 변하는 레인보우 로즈까지 개발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를 수입해서 게임으로 상품화했다고 합니다.


연인들끼리 입김으로 후우 불어 장미가 어떤 색으로 변하는지 알아맞히는 게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전까지 장미는 그저 또 하나의 꽃일 뿐 저에게 어떤 추억이나 별다른 감흥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장미 화분에서 연분홍빛의 장미 한송이가 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아침마다 선선한 바람을 타고 온 집안에 장미의 향기를 선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평온의 일상에 스며든 장미의 향기가 저의 무심한 마음을 출렁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요즘 극장가에 프랑스 감성이 물신 풍기는 영화 차가운 장미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차가운 장미는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이 완벽해 보이는 중년 부부에게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의문의 장미꽃이 배달되면서


벌어지는 인생의 변화를 담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꼭 제 일상에 벌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쩜 저 작은 한송이 장미가 온 주변을 자신의 향기로 가득 채울 수 있을까?”


문득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라는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집안에 가득 찬 장미향을 통해 그 말씀을 묵상해 보니 그 말씀의 의미가 진한 향기로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저 장미 꽃처럼 우리의 주변에 이러한 향내를 선물하는 교회가 되고 싶어지네요....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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