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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06 16:53

독서는 보통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취미독서와 지식독서 그리고 성장독서입니다. 취미독서는 말 그대도 취미로 하는 독서입니다.

 

보통 이력서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는 경우와 같은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독서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 혹은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한 독서입니다.

 

사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 독서만틈 탁월한 효과를 가진 것이 없습니다.

 

 영국의 한 연구기관에서 독서, 음악감상, 산책, 비디오 게임 등이 스트레스를 얼마나 줄여 주는지를 측정했는데, 그 결과 독서 68%, 음악감상 61%,

 

커피타임 54%, 산책 42%, 비디오 게임 21% 순으로 스트레스 감소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스운 소리로, 커피 한잔과 함께 독서하면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취미독서를 뛰어넘는 독서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지식독서는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입니다.

 

대부분 책을 읽는 경우가 지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지식독서 역시 지식을 얻는데는 유용하지만, 변화와 성장을 위한 독서는 아닙니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인격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지식독서를 뛰어넘어 성장독서를 해야 합니다. 성장독서는 삶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독서입니다.

 

독서를 통해 사색하고, 그것을 통해 삶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실천하는 독서가 진정한 독서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성공자 독서와 인문학 독서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특히 인문학 독서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혁신을 이끄는 삶으로, 사랑하는 삶으로, 위대한 업적과 성취를 이루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가장 분명한 진리중에 하나는 성장과 변화의 시작은 독서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공사가 완성되면 북 카페에 반드시 읽어야할 인문학 도서와 신앙도서를 채울 예정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당장 독서를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생겨날 것입니다. 독서로 당신의 운명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9.06 16:51

마태복음 5:10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는 ‘예수님 때문에 받는 박해’와 동일합니다.

 

따라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말은 선하게 살기 위해 고통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해 핍박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를 구하는 삶은 단순히 깨끗하게 사는 삶을 뜻하지 않습니다. 의를 위해 받는 박해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복음과 믿음 때문에 받는 박해입니다.

 

의를 위해 사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성공의 영웅이 되도록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슈퍼 영웅이 혹은 훌륭한 명사가 되도록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예수님을 위해 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이 왜 복입니까? 의를 위해 박해 받음은 천국백성임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의를 위해 핍박받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삶은 우리가 천국의 시민임을 확증합니다.

 

우리가 천국의 시민이기에 기꺼이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할 때 우리에게 박해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딤후3:12)

 

경건한 삶과 박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필연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박해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았음을 가장 잘 보증하는 것이 우리가 박해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물리적인 박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리스도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란 말씀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안전한 삶이 아니라, 박해받는 삶이 분명 하나님의 자녀됨의 증거임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타협하여 평안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우리의 삶의 고난의 흔적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주님께서도 고난받은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를 위한 십자가의 흔적, 의를 위한 박해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러한 박해의 흔적이 우리의 상급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된 복입니다. 이러한 참 믿음의 흔적들이 많아지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8.12 15:21

   우리 나라에 5대 국경일이 있습니다. ‘제헌절’,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 5대 국경일입니다.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조선왕조 건국일이 7월 17일인데(1392년), 이 날과 맞추어 제헌절을 공포하였다고 합니다.

 

헌법 제정은 대한민국 건국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과정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나라 헌법이 공포되기 이전에 1948년 5월 10일에 해방이후 민주적 방법으로 국민이 직접투표로 제헌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31일에 첫 국회가 개원식을 거행했습니다.

 

당일 오전에 임시의장으로 사회를 맡은 이승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윤영 의원을 시켜 하나님께 기도드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이승만이 198명의 재석인원 중 188표로 의장으로 당선이 되고 오후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개회사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대한민국 제 1차 국회를 열기 위하여 모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이 있게 된 데 대하여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와 둘째는 애국선열들의 희생적 혈전한 공적과 셋째로는 우리 우방들 특히 미국과 국련(UN)의 공의상 원조를 깊이 감사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개회사에서 이승만 국회 회장은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1948년 7월 17일에 헌법을 공포하고, 7월 20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196명 중 180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부통령에는 이시영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수립선포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올해 광복절은 해방 70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대한민국의 탄생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건국지도자들의 기도가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역사인식과 믿는 우리들이 가진 역사 인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관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고,

 

국가 지도자들이 그 은혜를 감사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기도로 민족의 정체성을 세웠듯이 해방 70년을 맞이하면서 한국교회는 이 복된 전통을 계승해야할 것입니다.

 

참된 애국의 시작은 민족을 위한 기도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8.12 15:18

     ‘화평케 하는 자’란 평화를 만드는 자라는 것입니다. ‘화평’은 헬라어로 ‘에이레네’, 히브리어로 ‘샬롬’이라고 합니다.

 

그 뜻이 우리 말로 ‘평화’ 혹은 ‘화평’으로 번역됩니다. 그런데 ‘화평케 한다’는 것은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라는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평화가 없는 곳이 바로 지옥과 같은 곳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가정과 교회라하더라도 그 곳에 평화가 없으면 그야말로 지옥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화평을 만들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평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자심을 비우심으로 화평을 만들어 내셨습니다.(빌2:5-7)

 

화평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마음 즉 낮아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욕심은 서로를 분열케 하는 원인이 됩니다.(약4:1) 공동체 안에서의 다툼이 욕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욕심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 욕심, 내가 드러나야 하는 욕심,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욕심, 기득권 등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자가 받는 복은 무엇입니까? 화평케 하는 자가 받는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마5:9)

 

이것은 우리가 화평을 만들어 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보통 ‘하나님의 자녀’는 위치나 신분을 말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성품의 분담자’, 곧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 ‘하나님을 보여주는 자’로서의 ‘작은 예수’의 모습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다워진다’는 말입니다. 화평을 이루어갈 때 하나님의 아들다워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의 아들다워지는 것입니까? 어떤 일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삶을 살 때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큰 예수님을 닮은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에서 화평을 주도하는 자입니다.

 

우리 삼광교회는 화평한 공동체를 이루어감으로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증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7.17 17:59

    2주 연속 다루었던, 동성애와 관련한 칼럼을 잠시 접고, 다가오는 전교인 여름 휴가를 위한 글을 짧게 써보려고 합니다.

 

이번 전교인이 참여하는 여름 휴가는 컨셉은, ‘쉼’과 ‘공동체 경험’입니다.

 

기존의 교회수련회 개념을 탈피하여, 진짜 전교인이 함께 하는 휴가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의 쉼과 회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분들은 이번 전교인 휴가가 무척이나 낯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말씀집회 한 번 없으니 말입니다.(참고로 이번 모든 행사는 모두 교우들이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종종 인용하는 예화를 다시 반복하고 싶습니다. 제가 미국 풀러(Fuller)에서 공부할 때, 곽선희 목사님께서 한 주간 미국에 오셔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우 중에 한 사람이 질문했습니다.

 

 “그 연세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셨다 가는 것이 쉽지 않으실텐데, 굳이 한 주간 강의를 위해 미국으로 오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곽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미국에 굳이 오는 이유는 강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지구 반대편에 가야 내가 보이기 때문이라네”.

 

또한 김진홍 목사님은 매년 '몽골광야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그곳을 다녀온 분들마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 전교인 함께하는 휴가가 바로 이런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탈피하여, 정말 푹 쉬면서 자신과 삶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자신과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주함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한가한 시간에만 가능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여러분 자신과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면서, 우리 모두가 ‘삼광인’이라는 가족애를 다시금 확인하길 원합니다.

 

아직도 마음에 결정하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회개하시고(^^) 빨리 신청서를 제출하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7.12 13:05

    기독교가 반대하는 것은 소수자의 인권이 아니라 동성애이다.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것은 인권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가정을 파괴하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미국연방대법원에서 동성애 합법화 결정이 있기 전, 이미 영국에서는 2010년 차별 금지법이 제정되었다.


사실 1967년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더 이상 죄가 아닌 것이 되었다. 1970년대 동성애 자유해방전선이 설립됐고, 1992년 게이퍼레이드가 처음 열렸다.


더 심각한 것은 2000년도 군대 내 동성애 금지조항이 사라졌고, 2004년에는 대중 앞에서 남자끼리 동성애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영국에서 2002년 동성애자들이 아이 입양을 할 수 있는 법이 생겼고, 2004년에는 성전환자가 전화된 성을 인정받는 법이 통과 되었고,


2014년에 동성애자들이 합법 부부가 되는 법이 통과되었다. 사실 영국에서는 이 법들의 실체를 몰라 교회가 전혀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전부 인권으로 포장하는데, 문제는 아주 악한 것들을 입법화하는 것이 문제이다.


현재 영국에서는 여기에 대항하면 처벌을 받는다. 영국에서는 초등학교 추천도서들 가운데 동성애 조장 동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국공립 학교에서는 이 책들을 반드시 읽게 한다. 이것이 지금 동성애자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동성애를 가르치지 않는 것 때문에 문을 닫는 학교가 많아졌고, 동성애 문제를 상당해 주던 많은 이들이 법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영국의 상황을 한국교회는 반면교사 삼아 반드시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막아야 한다.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기에 있고, 한국교회가 이 일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나라와 조국을 구하는 일이다.


현재 영국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학생들을 영국학교에서 격리당하고 있다. 그래서 학생이나 학부모들이나 이런 일들에 대한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영국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었다. 현재 한국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존재하고, 친동성애 NGO가 있는데, 정말 조심해야 한다.


영국인권위원회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대해 ‘질병’이라고 표현한다.


현재 영국에서는 노방전도자도 체포가 된다. 비디오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페이스 북 등 SNS로 전도하면 계정을 잃거나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영국은 강력한 기독교 국가였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 이후 한순간에 달라졌다. 한국에서도 모 시장은 동성애를 찬성하고, 차별금지법을 추진하는 시장도 있다.


이제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7.04 11:35

    요즘 낯설지만, 심심찮게 회자되는 말이 퀴어축제(queer festival)란 말입니다.


퀴어(queer)는 영어의 속어로, 동성애를 지칭하는데 요즘은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퀴어문화축제’는 한국에서 개최되는 한국의 성소수자 축제를 말합니다.


2000년에 처음 개최되었다고 하는데, 2009년부터는 대구에서도 ‘대구문화퀴어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행사의 주(主) 목적은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가행진은 자긍심을 높인다는 의미로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 퀴어축제는 1970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동성애 합법화를 결정했습니다.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다수결원칙의 민주주의의 가장 큰 병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성애자들의 주장은 동성애는 다원적 가치라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다름을 인정해야 비로서 사회가 배타적이거나 왜곡된 가치관에서 벗어나게 되고, 사회는 성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성애 합법화는 다름의 가치와 다른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더라고, 그 기준은 반드시 윤리적이어야 합니다.


동성애는 비윤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할 수 있어야 성숙한 사회인 것입니다.


동성애는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 틀림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틀림을 인권의 문제에 결부시켜 포장합니다.


동성애를 상징하는 깃발이 레인보우(무지개) 깃발입니다.


미국에서 동성애 합법화가 이루어지는 날, 백악관이 이 무지개 빛으로 물들여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 깃발의 색깔은 1978년 길버트 베이커란 화가에 의해 디자인 된 것입니다.


그 깃발의 무지개 색은 각각 ‘섹슈얼리티’(sexuality), ‘삶’, ‘치유’, ‘태양’, ‘자연’, ‘예술’, ‘조화’, 그리고 ‘영혼’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차원에서 보면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노아심판 이후에 더 이상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표징이었습니다.


그 무지개의 상징을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상징으로 상징합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약속처럼 자신들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란 희망의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성경은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동성애가 그곳에 범람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반드시 그 대상자들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합니다.


동성애는 비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죄악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결국 창조질서를 거스리는 삶으로 나아가게 마련이고, 그 대표적인 예가 동성애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소수자의 인권이 아니라 ‘동성애’입니다.


 -다음 주에 계속해서-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7.04 11:32

마1:8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말씀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여기서 마음은 단순히 ‘heart’ 즉 “인간의 내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전 존재’를 대표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마음’은 우리 존재됨을 의미한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는 바로 ‘우리의 전존재가 청결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 “청결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청결’이란 말은 헬라어로 ‘카타로스’인데 이것은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빤 상태, ’쭉정이를 다 제거한 순전한 알곡의 상태‘,


’물이나 다른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포도주 혹은 순수한 우유‘를 가리킨다. 따라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의 존재가


 완전한 깨끗해진 상태, 순전한 알곡의 상태, 불순물이 없는 순전한 상태를 말한다. 이것을 우리는 온전한 성화의 상태라고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지는 상태이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복이다.


왜 그것이 복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 신묘막측한 존재로 만드셨다. 우리의 신체를 보면 경이롭다.


가령 우리의 눈이 만들어지려면 100만개의 눈 신경이 뇌를 떠나고, 100만개의 눈 신경이 눈을 떠나 정확하게 짝을 찾아 결합될 때 눈이 된다.


그리고 눈이 형성되어도 아직 볼 수 없는데, 그것은 우리의 눈이 피부로 덮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6개월 되는 때에 눈을 덮는 피부가 갈라져서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체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죄로 인해 우리의 존재됨에 심한 왜곡과 뒤틀림과 부패를 가져왔다.


죄로 인하여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졌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금 회복한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5:17)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복이 무엇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바로 이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성화의 과정이어야 한다.


자신의 전 존재의 변화가 복이다. 긍휼이 여기는 자가 doing 즉 행함의 변화라고 본다면, 마음이 청결한 것은 being즉 존재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팔복은 우리의 행함과 존재의 변화를 모두 이야기 하고 있다. 진정한 변화는 바로 우리의 존재됨과 삶이 모두 변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복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자가 많아지는 것이 복인 것이다. 그렇다면 삼광교회는 복된 교회인가?


여러분이 바로 그 답이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6.19 22:44

성경에는 ‘긍휼’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긍휼은 헬라어로 ‘엘레오스’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감정이나 마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표현된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잘 표현된 행동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긍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표현된 행동이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죽게 되어 길에 누워 있었습니다.


제사장도 지나가고, 레위인도 지나갔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있었을 것이지만 마음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다”고 합니다. 즉 긍휼이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습니까? 가까이 가서,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싸매어 주었습니다.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처럼 긍휼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행동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정적 동의로만 끝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행함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마5:7은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긍휼이 여김을 받는 것은 구체적인 보상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심령의 가난함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여, 애통하는 눈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능함과 비어있음을 고백하면


마음이 옥토와 같은 온유한 심령으로 말씀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 앞에 섬김과 순종의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과 이웃과 바른 관계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의에 주린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제적으로 실천하는 긍휼의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 실천하는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자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이것이 천국백성의 복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6.19 22:42

온 한반도가 중동호흡기 증후군 메르스(MERS-CoV)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메르스는 치사율이 40%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는 사스보다 4배가 높은 수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어진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메르스의 전염성에 대한 그릇된 정보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메르스가 접촉이 아닌, 공기 중에서도 감염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은 현재 우리 나라에서 메르스의 전염속도가 유례없이 빠르기 때문에 변종 메르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확인된 바 없고, 보통 메르스는 기침을 통해 나온 분비물로 전염되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 접촉해야만 옮겨진다고 합니다.


웃지 못할 일은 이것 때문에 메르스가 코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바세린을 바르거나 양파를 두면 감염을 막아준다는


황당한 예방법들이 소문으로 퍼졌습니다. 메르스 공포로, 두려워 떠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치사율 100%에 달하는 ‘죄’에 대하여는 무감각합니다. ‘


죄’는 사람들을 100%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역사와 통계가 증명합니다. 그리고 죄의 전염성은 메르스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첫 아담의 범죄로 인해 온 인류는 모두 죄로 감염되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죄의 심각성은 느끼지 못하며 삽니다.


인터넷 정보를 보니까 아직 메르스를 치유할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인 듯 합니다.


하루 빨리 메르스를 치유할 백신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죄는 이미 치유백신이 존재합니다.


죄를 치유할 유일한 백신은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죄를 씻어내고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합니다.


따라서 메르스 백신이 개발이 감염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듯이 십자가의 복음처럼 인류에게 기쁜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치사율 100%인 죄의 공포보다 메르스를 더 두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바라기는 죄의 백신인 복음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소원해 봅니다.


그리고 이번 정부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세월호 사고와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한 부실한 대응만큼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속히 이 나라가 메르스의 공포로부터 자유케 되길 기도합니다.

 

글쓴이 담임 목사 하의용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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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35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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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구역공과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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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헌금 안내
농협 301-0170-4479-41 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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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홍길동십일조, 홍길동감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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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2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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