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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02 13:47

 


우리가 신앙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내면의 상처와 부정적인 자아인식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하실 때 반드시 그 사람을 만들어 사용하십니다. 가령 예를 들어 모세는 자신의 출신배경, 실패, 무의미한 세월로 인해 수많은 상처와 더불어 내면이 무너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장애 중에 하나가 분노입니다.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애굽 사람을 쳐 죽이는 살인을 합니다. 또한 출애굽 이후에 그는 시내산 에서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하는 모습에 분노하여 십계명을 던져 버립니다. 결국 분노로 바위를 두 번 내리침 으로써 그는 하나님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모세의 분노를 참지 못하는 욱하는 성질은 바로 그가 가지고 있었던 심리적 장애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세의 심리적 장애, 내면의 문제점을 치유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신 것은 그의 부끄러운 과거가 전혀 해가 되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의 도구로 택하신 것은 그의 자랑스러운 가문이나 뛰어난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모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 마음껏 하나님을 위해 날지 못하는 새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얽매는 것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우리의 과거의 상처와 우리 과거의 실패, 과거의 약점을 아시고도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신분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과거 때문에 현재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감격과 기쁨을 누리지 못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건과 배경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 내면에 있는 모든 상처들을 털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11.21 11:39

    세례는 예수님의 구원자되심과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바른 신앙고백이 세례의 조건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의 존재와 삶을 달라지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인생의 출발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고백하는 순간부터입니다. 그때부터 내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세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세례는 이제 옛자아가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세례는 우리의 바뀐 신분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세례는 내가 어디에 속한 자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따라서 세례받는 자는 사람의 생각을 멈추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일을 생각하는 자가 하나님 백성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성장이란 삶의 생각을 지워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부인이 없는 신앙고백은 가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십자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내 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사건입니다(갈2:20).

 

비록 평생 우리는 물세례를 단 한번 받게 되지만, 날마다 성령세례를 통해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경험을 되풀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의 문제는 내가 죽지 않는데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욕망과 인간적인 욕심이 죽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내가 죽으면 예수님이 사십니다. 한편 세례와 마찬가지로, 성찬도 십자가의 경험입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고백하고 기억하는 것이 성찬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만찬을 통해 자신을 기억하도록 명하셨습니다(고전11:23-25). 성찬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감격을 기억하게 합니다.

 

따라서 성찬에 임할 때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가 나를 구원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떡과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죽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의 십자가를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례주일을 맞이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경험하여,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새롭게 다짐하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11.15 17:33

우선, 진정한 감사는 내가 무엇을 얻었다는 결과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베푸신 은혜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김현승 선생님의 시 “감사하는 마음”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마음이다.” 가진 것이 많아야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 그리고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자신의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신앙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가 됩니다.

 

감사는 상대방에게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그 이유는 감사가 상대방의 공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감사는 믿음의 고백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진정한 감사는 표현되어야 합니다. 감사 마음이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표현되어지지 않는 감사는 감사가 아닙니다. 나만 감사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감사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 주인공입니다.

 

감사의 대상이 기뻐하는 것이 감사의 목적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감사함으로 표현할 때 하나님에게 큰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감사는 온전한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 오늘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믿음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구원의 증표가 바로 감사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생활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최대 덕목입니다 만일 내 입술에 삶에 감사가 없다면 내가 진정 구원받은 자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감사의 믿음이 반드시 고백되어 집니다. 따라서 진정한 감사의 삶은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묵상해 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10.31 11:25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걸림돌과 거치는 돌, 그리고 장애물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애로 인해 상황은 개선되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를 받고, 역공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믿음의 삶 혹은 사명의 삶이란 장애와 반대를 각오한 삶이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는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장애가 혹은 반대가 클수록 하나님의 역사도 크게 나타난다.

 

신앙의 차원에서 넓게 보면 장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의 반대를 하나님의 일하시는 디딤돌로 만들어야 한다. 고 옥한흠 목사님은 “고통에는 뜻이 있다”는 말씀을 즐겨하셨다.

 

옥 목사님은 병약하셨다. 옥 목사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내내 폐암으로 고통당하셨다.

 

그리고 폐암이 재발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제발 고통없이 잠 한 번 잘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하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을 통해서 한 사람의 영혼에 집중할 수 있는 목회철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믿음과 사명의 삶에 나타나는 반대와 역경을 오히려 하나님이 일하시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에 부딪히면 원망을 하기 쉽다. 걸림돌이 생겨날 때 동요하기 시작하고, 동요는 곧 원망의 소리를 잉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원망은 내부분열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사실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네 탓이요, 누구 탓이요 하고 명분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원망과 탓하기 이전에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원망하기 쉬우나 책임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믿음의 삶은 원망이 아닌 책임을 감당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바로 그 책임이 기도다. 원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직 기도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기도의 자리는 원망의 소리를 잠재우고, 다시금 믿음과 사명에 집중하게 만든다.

 

기도는 분열이 아닌 하나되도록 하는 역사를 가져온다. 하나님의 뜻은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우리가 지불해야 할 땀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것이 곧 기도이다. 장애가 있으면 넘으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삶의 장애를 하나님이 일하시는 디딤돌로 만들어야 한다. 기도는 삶의 장애를 하나님이 일하시는 디딤돌로 만들어 줄 것이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10.24 17:21

   하나님의 역사는 꼭 초자연적인 현상이 난무하고, 번개와 천둥이 치고, 신비로운 기운이 휩싸인 가운데 일어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역사하시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대부분 평범이란 너울을 쓰고 이루어집니다.

 

평범의 시간이 쌓여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대부분 평범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화끈한 신앙의 경험을 원합니다.

 

간혹 훈련을 하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화끈하게 역사해주셔서 나를 사로잡아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그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사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평범에 충실한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루 하루의 평범을 존중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보는 것처럼 평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위대한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반복되어지는 일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비범의 때에 쓰임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에 충실하지 못하면서 큰 일을 꿈꾸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평범의 영성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목자로써의 평범한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양들을 지키는 평범한 하루의 일과에 목숨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사무엘이 기름붓기 위해 자신의 집에 도달했을 때에도 그는 집안이 아닌 들판에서 양들을 지키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사람들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하찮은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하찮게 여기십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평범한 시간을 의미없는 날로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평범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반복되는 예배, 반복되는 섬김의 자리, 반복되는 기도, 반복되는 교제입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반복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짜 일꾼은 평범한 자리에서 신앙을 지키는 자가 진짜 일꾼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10.16 17:19

     첫째로 신앙은 자리 다툼이 아닌 어떤 삶을 사느냐의 싸움이다. 세상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반대로 섬기는 자가 높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즉 어떤 삶을 사느냐가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은 자리와 역할의 비중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리의 비중에 관심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인류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실 수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 높고, 성공한 자리, 물질적인 부함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린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교회의 현장에서도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묵묵히 섬기며,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자들이 진정으로 큰 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크게 보시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신앙은 무엇을 더 두려워하느냐의 싸움이다.


하나님은 한 시대를 구원하기 위해서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하신다. 그러나 대부분 그 시대에 합당한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통해서 시대를 구원하신다.


지금 이 시대를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혼돈의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시대의 대안인가? 바로 성도가 답이요 교회가 답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대의 대안으로 삼길 원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대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그들은 시대와 상황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신앙은 바로 이 싸움이다.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사탄의 소리, 세상의 소리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생명과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싸움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다. 현실과 하나님이 충돌하는가?


그때 일수록 우리는 현실에 속지 말고,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현실이 아무리 두렵고, 떨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우리의 삶에는 늘 세상이 주는 위협이 존재하며 당장에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닥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현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셋째로 신앙은 무엇을 붙드냐의 싸움이다.


즉 신앙은 생명을 붙잡는 싸움이다. 무엇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는가보다 가치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더 큰 가치를 두는가? 바로 생명과 희생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은 최고의 가치인 생명의 가치를 붙잡는 싸움이다. 우리의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생명을 붙잡는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 자신은 진정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는 진정 자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10.07 17:35

    성경을 이해할 때에 주의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이해되지 않고,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말씀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넘어가야 합니다.(참고/ 벧후1:19-20).


믿음이 자라야 신앙의 연수가 더 깊어져야 깨달아지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알 수 없는 지식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크면 다 알게 된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은 청춘같다는 것’,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는 아무리 얘기에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어느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 이해되는 시점이 옵니다.


이해되는 시점은 바로 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데, 우리 인생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나에게 허락하셨는가?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내게 삶에 대한 난제가 주어질 때에 너무 그때를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통 어렸을 때 첫사랑이 실패하면 삶이 끝난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실패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하면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삶의 난제에 부딪힐 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실 것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풀릴 때가 찾아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난제를 풀려고 애쓰는 것보다,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 것입니다.


따라서 삶의 난제에 부딪힐 때 우리는 원망이나 좌절 그리고 한탄 속에서 자신의 삶을 허비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닫게 하실 때까지 인내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절대로 헛되지 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훈련받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내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더욱 더 하나님 앞에 더욱 성결하며,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10.07 17:31

     지난 주 확신반 16기가 수료되었습니다. 확신반의 주(主) 내용은 복음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죄(罪)가 무엇이고, 구원(救援)이란 무엇인가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어집니다.


확신반을 통해 복음이 전달되어지는 기쁨과 또 복음을 통해 복음 위에 자신의 신앙을 세우고, 재설정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격스럽습니다.


이번 확신반을 수료한 분들의 소감문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소개해 봅니다.


“좀 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고 또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바른 자세를 배우고 하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는 삶의 방법을 다시금 배워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고 섬겨온 것 같습니다. 이번 확신반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지금의 나이가 아닌 좀 더 일찍이 이런 기회가 왔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껏 내가 생각했던 믿음이 잘못됨을 알았고, 앞으로 참 믿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일상을 가져 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4주 동안 보람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예배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믿음의 성장을 더욱 더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확신반을 통해 4가지 명제를 배우게 돼서 많은 것을 얻고 가는 것 같고, 이 배움을 통해 더욱 믿음이 성장하는 제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해가 잘 되게 알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앙은 확실한 복음의 기초와 성경적인 복음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확신반을 통해 복음의 기초와 확신을 얻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아직도 확신반을 듣지못한 교우들이 계시다면 다음 기회에 꼭 신청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이번 확신반을 마치면서 교회는 복음이 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쳐봅니다. “복음이여 영원하라~”.


글쓴이 하의용목사

15.09.13 14:31

사람은 잘 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어제와 똑같이 살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성을 한다는 것은 변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화란 내면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3장 16절에서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면의 변화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변화할까요? 사람이 변화하려면 먼저 좋은 정보들이 입력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들음은 단지, 문자적으로 듣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좋은 정보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다양한 매체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통로가 독서입니다.

 

따라서 믿음생활을 위해 독서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독서를 통해 좋은 정보들이 입력되면 정보를 내재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난 이후 묵상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리고 내재화된 정보는 반드시 표현되어야 합니다.

 

표현을 통해서 내재화된 정보가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실천입니다.

 

북 카페의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독서하고, 토론하고, 서로 나누고 실천함으로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준비과정으로 북 카페 운영위원회 및 후원모임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운영위원회를 통해 북 카페의 실제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하고 독서모임을 진행시키려고 합니다.

 

자발적인 참여로 북 카페가 여러분의 공간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9.06 16:54
'독서의 힘’이란 책에 보면, 책 한권에는 30년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명저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좋은 책을 한 권 쓰기 위해서는 30년 정도는 교육을 받고 경험해야 합니다.

 

작가의 30년의 경험과 지혜가 녹아서 한권의 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 한권에는 30년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권을 읽으면 30년이 지혜가 나의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혜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을 통해서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험은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수명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는 동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고,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독서를 통해서는 무한대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는 일로 시간을 보내라 다른 사람이 고생하면서 깨우친 것을 보고 쉽게 자신을 개선시킬 수 있다”라고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독서하면 누구나 지혜를 얻는 지혜자가 될 수 있는데도 사람이 독서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서 한 말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결손가정에서 자라면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십대 시절에는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리면서 탈선하여 약물과 음주 흡연을 하기도 했고, 임신까지 했었습니다.

 

엄마와 살면서 방황을 많이 하자 아빠에게로 가서 잠깐 살게 되었는데, 그때 새 엄마의 도움으로 독서습관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독서의 힘으로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독서의 힘으로 세계 최고의 쇼 진행자가 된 것입니다. 독서하십시오. 독서하면 당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줄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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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구역공과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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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2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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