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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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02 10:05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여러 가지로 훈련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만나입니다. 예수님의 첫 시험도 이와 같았습니다.(4:3-4) 만나 훈련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백성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만나사건이 하나님의 훈련인 이유는 만나를 주실 때 여러 가지 규제를 두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만나의 목적이 공급자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면, 만나만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만나를 주실 때 하나님께서 규제를 많이 두시는 것은 만나의 목적이 단순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깨닫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규제가운데 하나가 출16:16입니다.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요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하나님께는 이 규제를 통해 무엇을 깨닫길 원하십니까? 양식을 쌓아두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나를 쌓아두려는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16: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16:20의 말씀과 마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의 말씀이 오버랩됩니다. 이처럼 만나의 교훈은 우리가 떡을 목적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며, 또한 떡을 쌓아두는 것으로 우리의 삶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반복 훈련 받았습니다. 매일 매일 삶에서 ! 이 땅에 양식을 쌓아두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구나를 반복해서 배웠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훈련 방식은 반복입니다. 결국 이러한 반복된 훈련의 결과가 출16:21입니다.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하나님의 말씀대로 먹을 만큼만 거둡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훈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더불어 가장 효과적인 훈련은 반복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평생 반복적인 영적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가 훈련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복입니다. 따라서 훈련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삼광교회 성도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올 한해도 여러분 모두가 조금 더 성숙하는 한 해가 되길 소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 하의용목사

16.02.19 15:35

 

우리 신앙의 삶에는 찬양하고, 노래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은총이며 축복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조상들은 인생도처 유청산이라고 고백하며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삶의 길에 푸르는 삶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행복감이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순간이 엇그제 같은데 순간 갑작스럽게 삶이 꼬이고, 삶을 포기하고 픈 고단함을 맛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광야를 지나다 보면, 벽에 부딪혀, 먹을 수 없는 쓴 물을 마시다가 토해내는 고통스러운 마라’(이스라엘 백성이 쓴 물을 마신 곳)의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마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는 방편이 되어집니다. 그 시험의 내용은 인생의 마라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 즉 테스트 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시험을 치면 주제파악이 됩니다. 주제 파악이 안되면, 절대로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려운 시험 앞에 서봐야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생의 마라 앞에 서봐야만 우리의 신앙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사실상 우리의 실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평소에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묵상하는 평상의 신앙의 모습을 통해서는 내 실력이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라 같은 삶에서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험을 통해서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완해 갈 때에 점점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라의 때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인생 마라의 때에 흔들림없이 견고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마라의 시간은 재앙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 마라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자체가 우리에게 심판의 재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인생 마라의 시험은 유익한 시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마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머리가 아닌 전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욥도 고난의 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집니다. 따라서 청교도들은 인생의 마라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으로 간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하의용목사

 

 

16.02.12 16:10

이 땅의 지상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싸우는 교회라고 해서 오해서는 안됩니다. ‘싸우는 교회를 잘못 오해해서 요즘 얼마나 교회 안에 싸움과 다툼이 많은지 모릅니다. 여기서 싸움은 영적인 싸움을 의미합니다. 지상교회는 영적 싸움을 준비하고, 영적싸움에 능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선, 지피지기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공격합니다. 손자병법의 허실(虛實)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상대의 강한 곳은 피하고, 약한 곳을 공격해야 한다.” 즉 나의 강한 점으로 적의 약한 곳을 공격해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전투에서도 사탄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사실 손자병법의 허실론은 지피지기 사상입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약한 부분이 어디인가?를 철저하게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에베소서 6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우리가 철저하게 무장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진리와 ‘, 그리고 평안과, 믿음, 그리고 구원과 말씀에 대한 확신과 기도의 삶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취약하십니까? 사탄은 당신의 취약한 점을 집중해서 공략할 것입니다. 올 한해도 우리의 취약점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영적전투는 팀워크(협동)가 중요합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감독인 무리뉴란 명장이 있습니다. 그는 지도자 생활을 한 이래 지난 201361일까지 635경기에 나서 43012679, 승률 67%에 달하는 '괴물 감독'입니다. 그런데 그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명언이 있습니다. “나는 그날 부진했던 선수를 비판하지 않는다. 언론의 공격으로부터도 지켜준다. 하지만 팀을 위해 뛰지 않은 선수는 예외다. 나의 축구관은 팀워크에 있다.” 축구는 절대적인 조직력의 게임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곳이 아니라 팀워크가 중요합니다. 교회공동체는 홀로 독불장군식의 군대가 아닙니다. 교회의 사역은 상호협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섬기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 은사를 가진 성도들의 힘을 합할 때 교회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우리 삼광공동체가 함께 팀 워크을 잘 이루어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백전 백승할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하의용 목사

 

 

16.02.02 09:45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이후에 내려옴이 더디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요구하여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구합니다. 인간은 항상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신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아론은 백성들의 요구에 금붙이를 모아다가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사실 아론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신앙고백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하루를 여호와의 절기로 선포하고, 예배와 축제를 벌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올바른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날을 구별해서 예배하고, 열정적으로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예배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했는데, 정작 그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고백도 있고, 예배도 있는데, 하나님의 이름만 내건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주일에 예배도 드리는데, 정작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된 풍요의 신입니다. 사실 인간의 종교는 다 금송아지를 다르게 변형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종교는 다 인간의 필요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필요는 항상 종속변수이고 하나님의 목적이 항상 불변의 상수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나의 필요를 위해 믿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종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기독교가 우리 자신의 필요를 존재한다면 아무리 영적인 활동을 하여도 그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금송아지일 뿐입니다. 우리들의 삶과 성공은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목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그 분을 섬기는 가치는 우리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세상과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을 위하여 그의 영원한 계획과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고 이것을 따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은 내가 필요할 때만, 우리 자녀가 대학에 들어갈 때만, 내 삶에 문제가 있을 때만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글쓴이 하의용 목사

16.01.22 16:32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을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거룩이 우리 인생의 성공입니다. ‘거룩은 구별됨인데,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이 구별하신 백성답게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은 백성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구별되어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지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지침의 역할을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실제적인 율법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십계명이고, 또한 율례입니다. 십계명은 일종의 헌법 또는 헌장과 같은 것입니다. 십계명은 일종의 헌법과 헌장과 같은 개념이기에 시대를 불문하고 절대적입니다. 반면 율례(statute)는 그 헌장을 시행하는 일종의 시행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by-law)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해 가는 내용입니다. 율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례에 있어 우리는 하나님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리를 고수하고, 그 원리를 각기 시대의 옷을 입혀 지켜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계명과 율례는 한마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율법으로 양분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율례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통로가 예배입니다. 예배자가 성도의 정체성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예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의 대상이 내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사실 그것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삶의 태도입니다. 내가 무엇을 더 사랑하고 있느냐의 태도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물질, 세속, , 쾌락을 더 사랑하면 그것은 주일에 예배드려도, 우상숭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예배의 핵심은 거룩과 세속을 분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어나는 세상의 일과 주일에 교회에서 하는 일을 모두 예배로 간주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예배입니다. 삶의 자리를 성전삼아, 지성소삼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예배가 되게 해야 합니다. 일상을 예배자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네가 선 곳을 거룩하게 하라는 삶을 사는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하의용 목사

  

 

 


16.01.15 17:46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불가항력적 은혜이듯이 사명도 불가항력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교회에 제공하십니다.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사명의 배후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십니다사명은 홀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배후에 함께 하시는 싸움입니다. 사명을 성취하시는 분은 이면에서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따라서 사명자는 표면적인 상황이나 여건보다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만을 던져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감당할 모든 것을 제공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도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열방의 선교적 일꾼으로 세우시기 위해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입니다. 사명과 함께 성령의 능력을 주셨습니다저는 직분자를 세울 때나 일꾼을 세울 때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을 봅니다. “아직 능력이 없어서 부족해서 아직 때가 아닙니다.” 어찌 보면 겸손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힘주시겠죠. 기도하며 하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직분자와  사명자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상황의 열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보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사명은 우리의 능력이 아닌, 순종의 태도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명자의 능력은 순종입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에 대해 걱정하는 것보다 사명을 향해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사명자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의지해야 합니다. 능력의 근원은 내가 아니라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위해 동역자를 주십니다. 모든 것을 자신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도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하기 위해서 자신의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 완벽한 일꾼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또 다른 동역자를 통해 채우십니다. 따라서 사명에 있어서 동역자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동역자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받은 동역자들입니다. 삼광교회가 창립 45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수고하신 모든 신앙의 선배들과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저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집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우리 교회의 배후에서 일하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몫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삼광의 교우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교회로 성장하길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담임목사 하의용

 

 

16.01.12 17:21


 

 

2001년 하와이 선교대회에서 아프리카 오지인 모리타니에서 선교하셨던 선교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20002월에 아직도 미개인이나 다름없는 아프리카 모리타니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마을은 추장의 말이 곧 법이며, 짐승의 머리를 만들어 놓고 제사를 지내는 부족마을이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그 미개인들에게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자 아이들과 여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족을 다스리는 추장이 마을을 떠나라고 경고를 하고, 자신의 경고를 듣지 않자 어느 날 선교사 부부가 사는 토담집을 헐어버리고 화살을 쏘아서 다리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를 절뚝거리며 숲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선교사님이 나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발을 구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서 보니 마을 추장의 아들이 늪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으로 자신을 내던져 그 아이를 구하고 자신은 그곳에 생명을 주었습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그 부족들에게 "예수를 영접하라!"는 말 한마디 하고 그대로 늪 속으로 들어가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 그 마을은 부족 모두가 예수를 영접하고 지금은 그 사모님이 조그만 학교도 세우고 성경을 가르치며 복음사업을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 사모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선교사님을 희생을 통해 이곳에 복음을 심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쁨으로 홀로 사역을 감당하신다고 하십니다. 선교사님의 사역에서 기적이나 치유나, 능력이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선교사님은 십자가에 삶을 사신 것 뿐입니다. 그저 한 영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드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십자가의 삶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곳에 불신의 영혼들이 새롭게 변화되는 힘이 되어진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가 물러가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전투의 승리의 비결은 우리가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강력한 능력을 가지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진정으로 패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십자가의 삶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십자가의 삶,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을 살 때 진정으로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의용 목사

15.12.30 16:39

우리의 삶은 영적 전투입니다. 따라서 신앙은 악한 영적 세력과의 영적 싸움입니다. 이것을 반증하는 증거 중에 하나가 신약성경에만 사탄과 악한 영들을 총 328회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세력들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재림을 통해 완전히 멸절될 때까지, 계속해서 성도와 교회를 대적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 능한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군대의 일원으로 부름받은 것입니다.(딤후2:3) 민수기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을 계수할 때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자들을 계수합니다. 교회는 교인의 수가 얼마인가를 자랑하지 말고, 영적싸움을 할 수 있는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를 자랑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싸움에 능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 삼광교회의 표어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5:15)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모두 거룩한 곳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있는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우리가 가는 일터, 우리가 가는 모든 삶의 현장이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통로인 우리 자신이 서 있는 곳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앙의 여정은 성화의 여정입니다. 거룩함을 위한 싸움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르는 거룩한 땅입니다. 성도입니다. 거룩은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성도는 날마다 영적 전투의 삶을 살기에 하나님 앞에 거룩된 자로 구별하여 성결을 유지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히 이루는 구별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사탄의 권세를 부수고,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의 신앙이 영적 전투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머무르는 거룩한 장소로써의 성전이 되어, 날마다 거룩을 이루어가는 한 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글쓴이 : 하의용 목사

 

 

 

 

 

15.12.15 19:07

미국 미시간 중에 있는 NPW(New Product Works)박물에는 무연담배, 무색콜라, 스프레이식 치약 등 그동안 연구개발은 완료되었지만 결국에는 실패로 귀결된 수만 점의 제품이 진열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패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눈물과 실패, 좌절과 낙담을 경험하게 됩니다. 유명한 리더도 수많은 실패를 딛고 거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강타자일수록 삼진을 많이 당하는 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닙니다. 가장 큰 실패는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딛고 다시금 바로 앞에서 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과거의 상처가 없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상처와 실패는 반드시 성경적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과감하게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과거를 완전히 무시하고 부인해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뒤에 것을 잊어버리라고 할 때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실패나 상처에 의해 나의 삶이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가 갖는 의미는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거의 실패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합니까? 바울은 뒤에 것을 잊어버리라고 하면서 동시에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그냥 지워버리려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여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실패와 상처는 비전을 붙잡을 때 자연스럽게 사그라지는 것입니다. 수많은 상처와 실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실패와 상처를 두려워하면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가운데도 주님이 주신 소명만 붙잡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실패와 상처는 아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점 때문에 일을 못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점이 더욱 더 하나님의 일하는 통로가 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상처입은 치유자란 말처럼, 상처입은 경험이 자신과 같은 상처를 입은 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치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상처를 딛고 일어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특별히 상처는 우리가 비전을 품을 때 회복되어지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나 실패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이 주시는 소명을 향해 달음질 할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글쓴이: 하의용 목사

 

 

15.12.08 16:36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시작하고 하나님의 주권으로 마쳐집니다. 인생은 삶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더욱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깊이는 여호와를 아는 깊이와 비례합니다. 우리 인생을 괄호로 묶는다면 나는 여호와이니라로 묶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괄호 안에는 하나님이 주권자되시는 내용들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모든 과정이 그 안에 채워지듯이 우리의 삶에 주권자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이 내 삶의 주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자신의 자녀 삼아주셨다.” “하나님께서 나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의 자리로 인도해주셨다.”

신앙의 성숙은 바로 인생의 주어가 하나님으로 채워져 가는 것입니다. 더욱 더 하나님이 내 삶의 주어의 자리를 차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의 시간은 하나님이 주권자되심을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세월을 통해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되심을 더욱 더 확고하게 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인되심을 알게 하는 통로가 바로 인생의 역풍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인생의 역풍은 반대로 우리에게 마음의 상함을 주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처럼 불행한 인생은 없습니다. 역풍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여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믿음의 자리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비극적인 인생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인생의 역풍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왕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역풍을 이길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내 삶의 진정한 왕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역풍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됨을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정도의 신앙에서 하나님의 실제로 나의 삶과 실존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삶의 역풍은 우리로 하여금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풍은 우리를 견고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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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구역공과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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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헌금 안내
농협 301-0170-4479-41 삼광교회
보내시는 분 성함+헌금내역
예)홍길동십일조, 홍길동감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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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2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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