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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17 17:59

    2주 연속 다루었던, 동성애와 관련한 칼럼을 잠시 접고, 다가오는 전교인 여름 휴가를 위한 글을 짧게 써보려고 합니다.

 

이번 전교인이 참여하는 여름 휴가는 컨셉은, ‘쉼’과 ‘공동체 경험’입니다.

 

기존의 교회수련회 개념을 탈피하여, 진짜 전교인이 함께 하는 휴가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의 쉼과 회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분들은 이번 전교인 휴가가 무척이나 낯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말씀집회 한 번 없으니 말입니다.(참고로 이번 모든 행사는 모두 교우들이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종종 인용하는 예화를 다시 반복하고 싶습니다. 제가 미국 풀러(Fuller)에서 공부할 때, 곽선희 목사님께서 한 주간 미국에 오셔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우 중에 한 사람이 질문했습니다.

 

 “그 연세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셨다 가는 것이 쉽지 않으실텐데, 굳이 한 주간 강의를 위해 미국으로 오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곽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미국에 굳이 오는 이유는 강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지구 반대편에 가야 내가 보이기 때문이라네”.

 

또한 김진홍 목사님은 매년 '몽골광야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그곳을 다녀온 분들마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 전교인 함께하는 휴가가 바로 이런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탈피하여, 정말 푹 쉬면서 자신과 삶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자신과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주함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한가한 시간에만 가능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여러분 자신과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면서, 우리 모두가 ‘삼광인’이라는 가족애를 다시금 확인하길 원합니다.

 

아직도 마음에 결정하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회개하시고(^^) 빨리 신청서를 제출하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7.12 13:05

    기독교가 반대하는 것은 소수자의 인권이 아니라 동성애이다.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것은 인권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가정을 파괴하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미국연방대법원에서 동성애 합법화 결정이 있기 전, 이미 영국에서는 2010년 차별 금지법이 제정되었다.


사실 1967년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더 이상 죄가 아닌 것이 되었다. 1970년대 동성애 자유해방전선이 설립됐고, 1992년 게이퍼레이드가 처음 열렸다.


더 심각한 것은 2000년도 군대 내 동성애 금지조항이 사라졌고, 2004년에는 대중 앞에서 남자끼리 동성애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영국에서 2002년 동성애자들이 아이 입양을 할 수 있는 법이 생겼고, 2004년에는 성전환자가 전화된 성을 인정받는 법이 통과 되었고,


2014년에 동성애자들이 합법 부부가 되는 법이 통과되었다. 사실 영국에서는 이 법들의 실체를 몰라 교회가 전혀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전부 인권으로 포장하는데, 문제는 아주 악한 것들을 입법화하는 것이 문제이다.


현재 영국에서는 여기에 대항하면 처벌을 받는다. 영국에서는 초등학교 추천도서들 가운데 동성애 조장 동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국공립 학교에서는 이 책들을 반드시 읽게 한다. 이것이 지금 동성애자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동성애를 가르치지 않는 것 때문에 문을 닫는 학교가 많아졌고, 동성애 문제를 상당해 주던 많은 이들이 법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영국의 상황을 한국교회는 반면교사 삼아 반드시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막아야 한다.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기에 있고, 한국교회가 이 일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나라와 조국을 구하는 일이다.


현재 영국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학생들을 영국학교에서 격리당하고 있다. 그래서 학생이나 학부모들이나 이런 일들에 대한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영국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었다. 현재 한국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존재하고, 친동성애 NGO가 있는데, 정말 조심해야 한다.


영국인권위원회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대해 ‘질병’이라고 표현한다.


현재 영국에서는 노방전도자도 체포가 된다. 비디오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페이스 북 등 SNS로 전도하면 계정을 잃거나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영국은 강력한 기독교 국가였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 이후 한순간에 달라졌다. 한국에서도 모 시장은 동성애를 찬성하고, 차별금지법을 추진하는 시장도 있다.


이제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7.04 11:35

    요즘 낯설지만, 심심찮게 회자되는 말이 퀴어축제(queer festival)란 말입니다.


퀴어(queer)는 영어의 속어로, 동성애를 지칭하는데 요즘은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퀴어문화축제’는 한국에서 개최되는 한국의 성소수자 축제를 말합니다.


2000년에 처음 개최되었다고 하는데, 2009년부터는 대구에서도 ‘대구문화퀴어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행사의 주(主) 목적은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가행진은 자긍심을 높인다는 의미로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 퀴어축제는 1970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동성애 합법화를 결정했습니다.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다수결원칙의 민주주의의 가장 큰 병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성애자들의 주장은 동성애는 다원적 가치라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다름을 인정해야 비로서 사회가 배타적이거나 왜곡된 가치관에서 벗어나게 되고, 사회는 성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성애 합법화는 다름의 가치와 다른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더라고, 그 기준은 반드시 윤리적이어야 합니다.


동성애는 비윤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할 수 있어야 성숙한 사회인 것입니다.


동성애는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 틀림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틀림을 인권의 문제에 결부시켜 포장합니다.


동성애를 상징하는 깃발이 레인보우(무지개) 깃발입니다.


미국에서 동성애 합법화가 이루어지는 날, 백악관이 이 무지개 빛으로 물들여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 깃발의 색깔은 1978년 길버트 베이커란 화가에 의해 디자인 된 것입니다.


그 깃발의 무지개 색은 각각 ‘섹슈얼리티’(sexuality), ‘삶’, ‘치유’, ‘태양’, ‘자연’, ‘예술’, ‘조화’, 그리고 ‘영혼’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차원에서 보면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노아심판 이후에 더 이상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표징이었습니다.


그 무지개의 상징을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상징으로 상징합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약속처럼 자신들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란 희망의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성경은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동성애가 그곳에 범람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반드시 그 대상자들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합니다.


동성애는 비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죄악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결국 창조질서를 거스리는 삶으로 나아가게 마련이고, 그 대표적인 예가 동성애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소수자의 인권이 아니라 ‘동성애’입니다.


 -다음 주에 계속해서-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7.04 11:32

마1:8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말씀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여기서 마음은 단순히 ‘heart’ 즉 “인간의 내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전 존재’를 대표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마음’은 우리 존재됨을 의미한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는 바로 ‘우리의 전존재가 청결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 “청결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청결’이란 말은 헬라어로 ‘카타로스’인데 이것은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빤 상태, ’쭉정이를 다 제거한 순전한 알곡의 상태‘,


’물이나 다른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포도주 혹은 순수한 우유‘를 가리킨다. 따라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의 존재가


 완전한 깨끗해진 상태, 순전한 알곡의 상태, 불순물이 없는 순전한 상태를 말한다. 이것을 우리는 온전한 성화의 상태라고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지는 상태이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복이다.


왜 그것이 복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 신묘막측한 존재로 만드셨다. 우리의 신체를 보면 경이롭다.


가령 우리의 눈이 만들어지려면 100만개의 눈 신경이 뇌를 떠나고, 100만개의 눈 신경이 눈을 떠나 정확하게 짝을 찾아 결합될 때 눈이 된다.


그리고 눈이 형성되어도 아직 볼 수 없는데, 그것은 우리의 눈이 피부로 덮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6개월 되는 때에 눈을 덮는 피부가 갈라져서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체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죄로 인해 우리의 존재됨에 심한 왜곡과 뒤틀림과 부패를 가져왔다.


죄로 인하여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졌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금 회복한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5:17)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복이 무엇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바로 이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성화의 과정이어야 한다.


자신의 전 존재의 변화가 복이다. 긍휼이 여기는 자가 doing 즉 행함의 변화라고 본다면, 마음이 청결한 것은 being즉 존재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팔복은 우리의 행함과 존재의 변화를 모두 이야기 하고 있다. 진정한 변화는 바로 우리의 존재됨과 삶이 모두 변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복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자가 많아지는 것이 복인 것이다. 그렇다면 삼광교회는 복된 교회인가?


여러분이 바로 그 답이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6.19 22:44

성경에는 ‘긍휼’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긍휼은 헬라어로 ‘엘레오스’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감정이나 마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표현된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잘 표현된 행동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긍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표현된 행동이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죽게 되어 길에 누워 있었습니다.


제사장도 지나가고, 레위인도 지나갔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있었을 것이지만 마음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다”고 합니다. 즉 긍휼이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습니까? 가까이 가서,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싸매어 주었습니다.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처럼 긍휼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행동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정적 동의로만 끝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행함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마5:7은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긍휼이 여김을 받는 것은 구체적인 보상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심령의 가난함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여, 애통하는 눈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능함과 비어있음을 고백하면


마음이 옥토와 같은 온유한 심령으로 말씀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 앞에 섬김과 순종의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과 이웃과 바른 관계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의에 주린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제적으로 실천하는 긍휼의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 실천하는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자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이것이 천국백성의 복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6.19 22:42

온 한반도가 중동호흡기 증후군 메르스(MERS-CoV)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메르스는 치사율이 40%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는 사스보다 4배가 높은 수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어진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메르스의 전염성에 대한 그릇된 정보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메르스가 접촉이 아닌, 공기 중에서도 감염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은 현재 우리 나라에서 메르스의 전염속도가 유례없이 빠르기 때문에 변종 메르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확인된 바 없고, 보통 메르스는 기침을 통해 나온 분비물로 전염되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 접촉해야만 옮겨진다고 합니다.


웃지 못할 일은 이것 때문에 메르스가 코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바세린을 바르거나 양파를 두면 감염을 막아준다는


황당한 예방법들이 소문으로 퍼졌습니다. 메르스 공포로, 두려워 떠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치사율 100%에 달하는 ‘죄’에 대하여는 무감각합니다. ‘


죄’는 사람들을 100%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역사와 통계가 증명합니다. 그리고 죄의 전염성은 메르스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첫 아담의 범죄로 인해 온 인류는 모두 죄로 감염되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죄의 심각성은 느끼지 못하며 삽니다.


인터넷 정보를 보니까 아직 메르스를 치유할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인 듯 합니다.


하루 빨리 메르스를 치유할 백신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죄는 이미 치유백신이 존재합니다.


죄를 치유할 유일한 백신은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죄를 씻어내고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합니다.


따라서 메르스 백신이 개발이 감염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듯이 십자가의 복음처럼 인류에게 기쁜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치사율 100%인 죄의 공포보다 메르스를 더 두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바라기는 죄의 백신인 복음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소원해 봅니다.


그리고 이번 정부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세월호 사고와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한 부실한 대응만큼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속히 이 나라가 메르스의 공포로부터 자유케 되길 기도합니다.

 

글쓴이 담임 목사 하의용

15.05.29 16:38

   마태복음 5:5에 보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합니다. 성경은 온유한 자가 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팔복은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수 있고, 애통하며 눈물 흘린 자가 온유해지는데, 그 이유는 눈물을 뿌리며 회개할 때

 

우리의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옥토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애통의 눈물은 우리 내면의 모든 교만의 찌꺼기들과 죄의 오물들을 다 씻어내고 정결하게 합니다.

 

따라서 회개와 눈물의 애통함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기경하여 옥토같은 온유한 땅이 되게 합니다.

 

그러면 왜 온유함이 복입니까? 옥토같은 온유한 심령이 말씀의 결실을 맺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의 마음에 구원과 말씀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온유한 자의 마음은 열매맺는 땅이 되므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의미는 부동산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열매맺는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유함이라 무엇입니까? 온유는 사전적으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 온유는 자기를 비워 종이되는 섬김을 의미합니다. 또한 온유는 통제된 힘입니다.

 

온유는 헬라어로 ‘프라오테스’인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온유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온유는 이 두 가지를 합한 의미인데, 곧 예수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되심의 무한함을 비워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 앞에 자신을 통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인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애통하는 자리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애통하고 눈물은 흘리는데, 적극적인 온유함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애통함은 자신을 비워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말씀의 열매를 맺는 온유한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온유한 자가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주인인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5.26 18:00

    잠시 미국에 살면서 미국사람에게 배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작은 것이라도 칭찬하는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은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험담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을 매우 나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인지 작은 것에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두 번째는 인사하며 웃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인사하고 웃습니다.

 

별일 아닌 것 같은데도 박장대소하며 웃곤 합니다. 반면 우리 민족은 눈물이 많은 민족입니다.

 

그 이유는 오랜 동안 굴곡의 역사를 살아오다 보니, 눈물이 끊어질 날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은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우는 민족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새소리를 들으면 “새가 노래한다”라고 말하는데, 우리 민족은 “새가 운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도 꼭 눈물을 흘려야 은혜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눈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56:8).

 

하나님의 자녀가 흘리는 눈물은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병에 담아 두겠다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도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마5:4)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애통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영적빈곤을 깨닫고 자신이 철저하게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만이 애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애통함은 심령이 가난함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할 때, 즉 자신이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가난함,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함에 대한 인식이 하나님을 향한 애통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저는 삼광교회가 이 애통함이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이 애통함이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절박함과 가슴을 치고 울부짖는 기도가 사라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이 애통함의 복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입니다. 요즘 새벽을 깨워 기도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5.19 15:01

  복음을 간추려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모든 인간에게는 고귀한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타락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저지르는 성질을 타고 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에 빠져있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은행을 털어본 적도 없고,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자신을 제대로 본다면 우리 자신 속에 얼마나 많은 죄의 모습들이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은 모두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모두 용서가 필요하며 그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를 보내셔서, 우리를 죄를 위해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사해질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소유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행위로 그분은 죽음을 물리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에게 쉬운 삶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새로운 삶은 영원까지 계속됩니다. 땅 위에서 우리의 시간은 짧지만 영원은 광대합니다.

 

“나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끝없이 지속되리라는 확신 또한 가질 수 있습니다. 철학자인 폴 틸리히가 인간은 항상 세 가지 공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의미없음에 대한 공포, 둘째는 죽음에 대한 공포, 셋째는 죄에 대한 공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공포를 물리치시고, 이것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삶의 의미없음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죄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될 분이십니다.

 

바라옵기는 참 진리되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시고, 인생에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죽음과 죄로의 공포로부터 자유케 되어지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4.26 16:21

    하루는 24시간이고 일주일은 168시간이며, 한 달은 720시간 그리고 1년은 8760시간입니다.


하루 10분쯤 낭비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이와 같이 무심코 낭비한 10분이 일년 동안 쌓이면 3600분이고, 60시간이며,


이틀하고도 반나절이나 됩니다. 하루에 10분씩 사용해서 기도를 한다면 60시간 동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10분씩 사용하여 일년 동안 책을 읽는다면 최소한 5권의 정도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10분의 시간이 아무 것도 아닌게 아닙니다. 자신이 꿈꾸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루 24시간 중 일부를 투자하면 됩니다.


하루에 한 시간이면 365시간이 되고, 하루에 세 시간이면 1095시간이나 됩니다. 하루에 세 시간씩 10년의 시간을 보내면 1만 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면 지금보다 10년 후의 삶은 확연하게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자신이 꿈꾸는 삶에 가까이 가 있을 것입니다.


현재 자신이 쓰는 24시간의 시간 사용을 보면 자신의 미래가 보입니다. 10년 그리고 20년 후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는 말은 핑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무리 바빠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위하여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이런 무명의 격언이 있습니다.


 “미래의 당신 자신이 감사할 무엇인가를 오늘 하라!” 오늘 바로 지금 미래에 내가 감사하고 기뻐할 일에 시간을 투자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한 차원 더 높은 시간투자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영원을 위해 우리의 현재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여러분의 소중한 현재의 시간을 가정(가족들)과 교회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투자해 보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미래에 감사하고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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