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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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24 17:21

   하나님의 역사는 꼭 초자연적인 현상이 난무하고, 번개와 천둥이 치고, 신비로운 기운이 휩싸인 가운데 일어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역사하시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대부분 평범이란 너울을 쓰고 이루어집니다.

 

평범의 시간이 쌓여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대부분 평범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화끈한 신앙의 경험을 원합니다.

 

간혹 훈련을 하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화끈하게 역사해주셔서 나를 사로잡아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그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사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평범에 충실한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루 하루의 평범을 존중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보는 것처럼 평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위대한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반복되어지는 일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비범의 때에 쓰임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에 충실하지 못하면서 큰 일을 꿈꾸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평범의 영성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목자로써의 평범한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양들을 지키는 평범한 하루의 일과에 목숨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사무엘이 기름붓기 위해 자신의 집에 도달했을 때에도 그는 집안이 아닌 들판에서 양들을 지키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사람들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하찮은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하찮게 여기십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평범한 시간을 의미없는 날로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평범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반복되는 예배, 반복되는 섬김의 자리, 반복되는 기도, 반복되는 교제입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반복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짜 일꾼은 평범한 자리에서 신앙을 지키는 자가 진짜 일꾼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10.16 17:19

     첫째로 신앙은 자리 다툼이 아닌 어떤 삶을 사느냐의 싸움이다. 세상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반대로 섬기는 자가 높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즉 어떤 삶을 사느냐가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은 자리와 역할의 비중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리의 비중에 관심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인류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실 수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 높고, 성공한 자리, 물질적인 부함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린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교회의 현장에서도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묵묵히 섬기며,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자들이 진정으로 큰 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크게 보시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신앙은 무엇을 더 두려워하느냐의 싸움이다.


하나님은 한 시대를 구원하기 위해서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하신다. 그러나 대부분 그 시대에 합당한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통해서 시대를 구원하신다.


지금 이 시대를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혼돈의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시대의 대안인가? 바로 성도가 답이요 교회가 답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대의 대안으로 삼길 원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대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그들은 시대와 상황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신앙은 바로 이 싸움이다.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사탄의 소리, 세상의 소리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생명과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싸움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다. 현실과 하나님이 충돌하는가?


그때 일수록 우리는 현실에 속지 말고,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현실이 아무리 두렵고, 떨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우리의 삶에는 늘 세상이 주는 위협이 존재하며 당장에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닥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현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셋째로 신앙은 무엇을 붙드냐의 싸움이다.


즉 신앙은 생명을 붙잡는 싸움이다. 무엇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는가보다 가치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더 큰 가치를 두는가? 바로 생명과 희생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은 최고의 가치인 생명의 가치를 붙잡는 싸움이다. 우리의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생명을 붙잡는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 자신은 진정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는 진정 자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가?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10.07 17:35

    성경을 이해할 때에 주의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이해되지 않고,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말씀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넘어가야 합니다.(참고/ 벧후1:19-20).


믿음이 자라야 신앙의 연수가 더 깊어져야 깨달아지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알 수 없는 지식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크면 다 알게 된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은 청춘같다는 것’,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는 아무리 얘기에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어느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 이해되는 시점이 옵니다.


이해되는 시점은 바로 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인데, 우리 인생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나에게 허락하셨는가?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내게 삶에 대한 난제가 주어질 때에 너무 그때를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통 어렸을 때 첫사랑이 실패하면 삶이 끝난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실패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하면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삶의 난제에 부딪힐 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실 것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풀릴 때가 찾아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난제를 풀려고 애쓰는 것보다,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 것입니다.


따라서 삶의 난제에 부딪힐 때 우리는 원망이나 좌절 그리고 한탄 속에서 자신의 삶을 허비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닫게 하실 때까지 인내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절대로 헛되지 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훈련받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내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더욱 더 하나님 앞에 더욱 성결하며,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10.07 17:31

     지난 주 확신반 16기가 수료되었습니다. 확신반의 주(主) 내용은 복음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죄(罪)가 무엇이고, 구원(救援)이란 무엇인가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어집니다.


확신반을 통해 복음이 전달되어지는 기쁨과 또 복음을 통해 복음 위에 자신의 신앙을 세우고, 재설정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격스럽습니다.


이번 확신반을 수료한 분들의 소감문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소개해 봅니다.


“좀 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고 또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바른 자세를 배우고 하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는 삶의 방법을 다시금 배워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고 섬겨온 것 같습니다. 이번 확신반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지금의 나이가 아닌 좀 더 일찍이 이런 기회가 왔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껏 내가 생각했던 믿음이 잘못됨을 알았고, 앞으로 참 믿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일상을 가져 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4주 동안 보람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예배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믿음의 성장을 더욱 더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확신반을 통해 4가지 명제를 배우게 돼서 많은 것을 얻고 가는 것 같고, 이 배움을 통해 더욱 믿음이 성장하는 제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해가 잘 되게 알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앙은 확실한 복음의 기초와 성경적인 복음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확신반을 통해 복음의 기초와 확신을 얻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아직도 확신반을 듣지못한 교우들이 계시다면 다음 기회에 꼭 신청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이번 확신반을 마치면서 교회는 복음이 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쳐봅니다. “복음이여 영원하라~”.


글쓴이 하의용목사

15.09.13 14:31

사람은 잘 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어제와 똑같이 살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성을 한다는 것은 변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화란 내면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3장 16절에서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면의 변화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변화할까요? 사람이 변화하려면 먼저 좋은 정보들이 입력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들음은 단지, 문자적으로 듣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좋은 정보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다양한 매체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통로가 독서입니다.

 

따라서 믿음생활을 위해 독서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독서를 통해 좋은 정보들이 입력되면 정보를 내재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난 이후 묵상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리고 내재화된 정보는 반드시 표현되어야 합니다.

 

표현을 통해서 내재화된 정보가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실천입니다.

 

북 카페의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독서하고, 토론하고, 서로 나누고 실천함으로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준비과정으로 북 카페 운영위원회 및 후원모임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운영위원회를 통해 북 카페의 실제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하고 독서모임을 진행시키려고 합니다.

 

자발적인 참여로 북 카페가 여러분의 공간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9.06 16:54
'독서의 힘’이란 책에 보면, 책 한권에는 30년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명저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좋은 책을 한 권 쓰기 위해서는 30년 정도는 교육을 받고 경험해야 합니다.

 

작가의 30년의 경험과 지혜가 녹아서 한권의 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 한권에는 30년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권을 읽으면 30년이 지혜가 나의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혜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을 통해서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험은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수명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는 동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고,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독서를 통해서는 무한대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는 일로 시간을 보내라 다른 사람이 고생하면서 깨우친 것을 보고 쉽게 자신을 개선시킬 수 있다”라고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독서하면 누구나 지혜를 얻는 지혜자가 될 수 있는데도 사람이 독서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서 한 말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결손가정에서 자라면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십대 시절에는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리면서 탈선하여 약물과 음주 흡연을 하기도 했고, 임신까지 했었습니다.

 

엄마와 살면서 방황을 많이 하자 아빠에게로 가서 잠깐 살게 되었는데, 그때 새 엄마의 도움으로 독서습관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독서의 힘으로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독서의 힘으로 세계 최고의 쇼 진행자가 된 것입니다. 독서하십시오. 독서하면 당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줄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9.06 16:53

독서는 보통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취미독서와 지식독서 그리고 성장독서입니다. 취미독서는 말 그대도 취미로 하는 독서입니다.

 

보통 이력서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는 경우와 같은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독서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 혹은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한 독서입니다.

 

사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 독서만틈 탁월한 효과를 가진 것이 없습니다.

 

 영국의 한 연구기관에서 독서, 음악감상, 산책, 비디오 게임 등이 스트레스를 얼마나 줄여 주는지를 측정했는데, 그 결과 독서 68%, 음악감상 61%,

 

커피타임 54%, 산책 42%, 비디오 게임 21% 순으로 스트레스 감소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스운 소리로, 커피 한잔과 함께 독서하면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취미독서를 뛰어넘는 독서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지식독서는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입니다.

 

대부분 책을 읽는 경우가 지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지식독서 역시 지식을 얻는데는 유용하지만, 변화와 성장을 위한 독서는 아닙니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인격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지식독서를 뛰어넘어 성장독서를 해야 합니다. 성장독서는 삶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독서입니다.

 

독서를 통해 사색하고, 그것을 통해 삶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실천하는 독서가 진정한 독서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성공자 독서와 인문학 독서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특히 인문학 독서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혁신을 이끄는 삶으로, 사랑하는 삶으로, 위대한 업적과 성취를 이루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가장 분명한 진리중에 하나는 성장과 변화의 시작은 독서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공사가 완성되면 북 카페에 반드시 읽어야할 인문학 도서와 신앙도서를 채울 예정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당장 독서를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생겨날 것입니다. 독서로 당신의 운명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9.06 16:51

마태복음 5:10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는 ‘예수님 때문에 받는 박해’와 동일합니다.

 

따라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말은 선하게 살기 위해 고통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해 핍박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를 구하는 삶은 단순히 깨끗하게 사는 삶을 뜻하지 않습니다. 의를 위해 받는 박해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복음과 믿음 때문에 받는 박해입니다.

 

의를 위해 사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성공의 영웅이 되도록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슈퍼 영웅이 혹은 훌륭한 명사가 되도록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예수님을 위해 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이 왜 복입니까? 의를 위해 박해 받음은 천국백성임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의를 위해 핍박받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삶은 우리가 천국의 시민임을 확증합니다.

 

우리가 천국의 시민이기에 기꺼이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할 때 우리에게 박해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딤후3:12)

 

경건한 삶과 박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필연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박해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았음을 가장 잘 보증하는 것이 우리가 박해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물리적인 박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리스도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란 말씀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안전한 삶이 아니라, 박해받는 삶이 분명 하나님의 자녀됨의 증거임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타협하여 평안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우리의 삶의 고난의 흔적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주님께서도 고난받은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를 위한 십자가의 흔적, 의를 위한 박해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러한 박해의 흔적이 우리의 상급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된 복입니다. 이러한 참 믿음의 흔적들이 많아지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8.12 15:21

   우리 나라에 5대 국경일이 있습니다. ‘제헌절’,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 5대 국경일입니다.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조선왕조 건국일이 7월 17일인데(1392년), 이 날과 맞추어 제헌절을 공포하였다고 합니다.

 

헌법 제정은 대한민국 건국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과정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나라 헌법이 공포되기 이전에 1948년 5월 10일에 해방이후 민주적 방법으로 국민이 직접투표로 제헌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31일에 첫 국회가 개원식을 거행했습니다.

 

당일 오전에 임시의장으로 사회를 맡은 이승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윤영 의원을 시켜 하나님께 기도드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이승만이 198명의 재석인원 중 188표로 의장으로 당선이 되고 오후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개회사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대한민국 제 1차 국회를 열기 위하여 모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이 있게 된 데 대하여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와 둘째는 애국선열들의 희생적 혈전한 공적과 셋째로는 우리 우방들 특히 미국과 국련(UN)의 공의상 원조를 깊이 감사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개회사에서 이승만 국회 회장은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1948년 7월 17일에 헌법을 공포하고, 7월 20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196명 중 180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부통령에는 이시영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수립선포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올해 광복절은 해방 70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대한민국의 탄생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건국지도자들의 기도가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역사인식과 믿는 우리들이 가진 역사 인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관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고,

 

국가 지도자들이 그 은혜를 감사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기도로 민족의 정체성을 세웠듯이 해방 70년을 맞이하면서 한국교회는 이 복된 전통을 계승해야할 것입니다.

 

참된 애국의 시작은 민족을 위한 기도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15.08.12 15:18

     ‘화평케 하는 자’란 평화를 만드는 자라는 것입니다. ‘화평’은 헬라어로 ‘에이레네’, 히브리어로 ‘샬롬’이라고 합니다.

 

그 뜻이 우리 말로 ‘평화’ 혹은 ‘화평’으로 번역됩니다. 그런데 ‘화평케 한다’는 것은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라는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평화가 없는 곳이 바로 지옥과 같은 곳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가정과 교회라하더라도 그 곳에 평화가 없으면 그야말로 지옥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화평을 만들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평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자심을 비우심으로 화평을 만들어 내셨습니다.(빌2:5-7)

 

화평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마음 즉 낮아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욕심은 서로를 분열케 하는 원인이 됩니다.(약4:1) 공동체 안에서의 다툼이 욕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욕심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 욕심, 내가 드러나야 하는 욕심,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욕심, 기득권 등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자가 받는 복은 무엇입니까? 화평케 하는 자가 받는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마5:9)

 

이것은 우리가 화평을 만들어 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보통 ‘하나님의 자녀’는 위치나 신분을 말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성품의 분담자’, 곧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 ‘하나님을 보여주는 자’로서의 ‘작은 예수’의 모습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다워진다’는 말입니다. 화평을 이루어갈 때 하나님의 아들다워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의 아들다워지는 것입니까? 어떤 일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삶을 살 때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큰 예수님을 닮은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에서 화평을 주도하는 자입니다.

 

우리 삼광교회는 화평한 공동체를 이루어감으로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증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글쓴이 담임목사 하의용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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