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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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01 18:12

2016년 새생명 축제 ‘더 사랑’  (the Love)


2016년 새생명축제가 5월22일에 있습니다. 금번 새 생명축제 준비위원회에서는 올해의 새생명 축제 주제를 “THE LOVE (더 사랑) ”라 정했습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the Love)을 받고 있는 우리가 ‘그 사랑’(the Love)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 사랑을 알려주자는 뜻을 담았습니다.
또한  ‘그 사랑’은 우리말 발음으로는 ‘더 사랑’ 입니다. 지금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한번 더 만나고  더 사랑하고 노력해보자라는 의 이중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도할 사람이 없다.” “하기 힘들다”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한번 더’ 라는 마음으로 참여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번 더 기도하고 한번 더 만나고 한번 더 사랑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께로 돌이키는 귀하고 복된 잔치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별히 오후 예배시에는 둘로스 합창단의 공연도 있습니다. 먼저 주일예배에 참석을 권면하시고 시간이 어려우면 오후에 둘로스 합창단의 수준 높은 합창에도 초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 을 기억하면서 한번 더 기도하고 한번 더 만나고 한번 더 접촉하여 예수님을 더 사랑할수 있는 삼광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 주일 예배시에 1차 태신자 작정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한 영혼을 품고 한번 더 기도하고 시작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일하실것입니다.

16.04.01 18:07
16.03.25 17:14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와 더불어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시키는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다’(고전15:20)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 열매’는 이스라엘의 ‘초실절’ 절기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초실절과 관련된 이해가 필요합니다. 유대인의 절기 가운데 ‘무교절’이 있습니다. 무교병을 히브리어로 ‘마짜’라고 하는데, 이 ‘마짜’를 먹는 일주일을 ‘무교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주일간의 무교절 중 첫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이 ‘초실절’입니다. 그러므로 초실절은 늘 지금의 ‘주일’ 즉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이 때 첫 열매를 성전에 바쳤기 때문에 ‘초실절’이라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렇게 첫 열매 제사가 성전에 드려진 후에야 예루살렘 시장에서는 곡식판매가 시작되었고, 추수한 곡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첫 열매 보릿단으로 초실절 제사를 드리는 것은 이후에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거둬드릴 추수를 기대하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언제 부활하셨습니까? 유월절에 돌아가신 예수님은 첫 안식일이 지난 첫날, 즉 ‘초실절’에 부활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첫 열매를 바치며 ‘초실절’ 행사를 하던 그 시각에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첫 열매로서 장자 있을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대표하게 된 것입니다.(고전15:21-23) ‘첫열매’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보증이요 예표가 됩니다. 더불어, 유대인들은 ‘첫 열매’하면, 애굽의 바로에게 내린 장자재앙을 떠올립니다. 히브리어 ‘장자’와 ‘첫 열매’는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따라서 애굽의 바로에게 내린 장자 재앙을 통해 노예상태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첫 열매’란 단어는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는 가슴 벅찬 단어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사탄의 권세와 죽음 앞에서 노예로 살던 우리를 해방시킨 영적 출애굽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첫 열매’란 단어가 가슴 벅찬 단어이듯이, ‘부활’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준 너무나도 가슴 벅찬 단어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6.03.18 16:43

성소에는 세 가지 기구가 있는데, ‘진설병상’, ‘등잔대그리고 향단입니다. 향단은 조각목로 만들어 그 위에 정금을 입힌 단()입니다. ‘향단위에는 성막 문에 있는 놋제단에서 가져온 불씨를 통해 끊임없이 향을 피웠습니다. ‘()’은 성경에서 기도를 나타내는 일반화된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향단의 삶은 끊임없는 기도의 삶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향단이 상징하는 기도의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기도의 삶은 하나님 백성의 특권입니다. 분향단은 제단처럼 모서리에 네 개의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30:2) 성경에서 뿔은 큰 능력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향단의 뿔은 기도가 큰 능력이요 힘임을 상징합니다. 기도는 큰 능력입니다. 따라서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찬송할 때 닫힌 옥문이 열리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기도는 능력이기에 막다른 곳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과 위로를 맛보는 자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향불의 가치는 번제단의 흘려진 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기도는 십자가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기도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십자가 때문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죄사함을 입지 않는 자는 결단코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오직 십자가의 죄사함을 받은 자들의 기도만을 들으십니다. 따라서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권입니다. 기도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의 전유물인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기도로 자신을 아버지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기도를 통해 십자가를 짊어질 능력을 힘입었습니다. 주님처럼 우리는 기도의 삶을 통해 십자가를 온전히 짊어지는 능력을 힘입길 원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십자가에 근거하지만 기도는 십자가를 완성합니다. 기도는 십자가를 완성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한 주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가 열립니다. 이 특별한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 안에 십자가의 삶을 완성해 가는 한 주간이 되시길 소원해 봅니다.

 

16.03.11 16:18

인생 길이 광야이기에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에도 어려움의 상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반응이 어떠해야 하는가?입니다. 보통 성도들은 이런 고통 앞에서 하나님 앞에 애곡하고 저항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고, 왜 막지 않으셨는지’ 이해할 수 없어 울부짖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이와 같은 처지에서 하나님께 애곡하고, 저항하고, 분노하는 목소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수많은 시편이 무고한 자들의 고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시편이 슬픔과 번민의 시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큽니다. 그러나 사실상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애통의 언어들이 불신앙이라고 무시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애통이 뭔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애통을 이해하고 받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표현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감정을 쏟아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공격할 때 하나님께 저항하고 애통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서 우리는 정직하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중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쏟아놓는데, 이것이 믿음의 틀 안에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난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역전되어서는 안됩니다. 고난의 때가 위험스러운 것은 나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세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고난받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셔야만 하는 존재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시는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됨이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을 나의 하수인의 위치에 놓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요청하면 반드시 그것을 따라야만 하는 분이 아닌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사탄의 시험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역전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위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때에 이런 시험의 유혹에 넘어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때에도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원망을 받아들여주시지만 하나님을 시험하는 불신앙은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믿음의 틀 안에서 하나님께 애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03.04 17:12
16.03.02 10:05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여러 가지로 훈련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만나입니다. 예수님의 첫 시험도 이와 같았습니다.(4:3-4) 만나 훈련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백성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만나사건이 하나님의 훈련인 이유는 만나를 주실 때 여러 가지 규제를 두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만나의 목적이 공급자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면, 만나만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만나를 주실 때 하나님께서 규제를 많이 두시는 것은 만나의 목적이 단순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깨닫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규제가운데 하나가 출16:16입니다.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요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하나님께는 이 규제를 통해 무엇을 깨닫길 원하십니까? 양식을 쌓아두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나를 쌓아두려는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16: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16:20의 말씀과 마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의 말씀이 오버랩됩니다. 이처럼 만나의 교훈은 우리가 떡을 목적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며, 또한 떡을 쌓아두는 것으로 우리의 삶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반복 훈련 받았습니다. 매일 매일 삶에서 ! 이 땅에 양식을 쌓아두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구나를 반복해서 배웠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훈련 방식은 반복입니다. 결국 이러한 반복된 훈련의 결과가 출16:21입니다.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하나님의 말씀대로 먹을 만큼만 거둡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훈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더불어 가장 효과적인 훈련은 반복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평생 반복적인 영적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가 훈련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복입니다. 따라서 훈련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삼광교회 성도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올 한해도 여러분 모두가 조금 더 성숙하는 한 해가 되길 소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 하의용목사

16.02.19 15:35

 

우리 신앙의 삶에는 찬양하고, 노래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은총이며 축복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조상들은 인생도처 유청산이라고 고백하며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삶의 길에 푸르는 삶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행복감이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순간이 엇그제 같은데 순간 갑작스럽게 삶이 꼬이고, 삶을 포기하고 픈 고단함을 맛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광야를 지나다 보면, 벽에 부딪혀, 먹을 수 없는 쓴 물을 마시다가 토해내는 고통스러운 마라’(이스라엘 백성이 쓴 물을 마신 곳)의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마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는 방편이 되어집니다. 그 시험의 내용은 인생의 마라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 즉 테스트 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시험을 치면 주제파악이 됩니다. 주제 파악이 안되면, 절대로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려운 시험 앞에 서봐야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생의 마라 앞에 서봐야만 우리의 신앙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사실상 우리의 실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평소에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묵상하는 평상의 신앙의 모습을 통해서는 내 실력이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라 같은 삶에서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험을 통해서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완해 갈 때에 점점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라의 때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인생 마라의 때에 흔들림없이 견고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마라의 시간은 재앙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 마라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자체가 우리에게 심판의 재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인생 마라의 시험은 유익한 시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마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머리가 아닌 전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욥도 고난의 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집니다. 따라서 청교도들은 인생의 마라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으로 간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하의용목사

 

 

16.02.12 16:10

이 땅의 지상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싸우는 교회라고 해서 오해서는 안됩니다. ‘싸우는 교회를 잘못 오해해서 요즘 얼마나 교회 안에 싸움과 다툼이 많은지 모릅니다. 여기서 싸움은 영적인 싸움을 의미합니다. 지상교회는 영적 싸움을 준비하고, 영적싸움에 능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선, 지피지기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공격합니다. 손자병법의 허실(虛實)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상대의 강한 곳은 피하고, 약한 곳을 공격해야 한다.” 즉 나의 강한 점으로 적의 약한 곳을 공격해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전투에서도 사탄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사실 손자병법의 허실론은 지피지기 사상입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약한 부분이 어디인가?를 철저하게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에베소서 6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우리가 철저하게 무장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진리와 ‘, 그리고 평안과, 믿음, 그리고 구원과 말씀에 대한 확신과 기도의 삶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취약하십니까? 사탄은 당신의 취약한 점을 집중해서 공략할 것입니다. 올 한해도 우리의 취약점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영적전투는 팀워크(협동)가 중요합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감독인 무리뉴란 명장이 있습니다. 그는 지도자 생활을 한 이래 지난 201361일까지 635경기에 나서 43012679, 승률 67%에 달하는 '괴물 감독'입니다. 그런데 그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명언이 있습니다. “나는 그날 부진했던 선수를 비판하지 않는다. 언론의 공격으로부터도 지켜준다. 하지만 팀을 위해 뛰지 않은 선수는 예외다. 나의 축구관은 팀워크에 있다.” 축구는 절대적인 조직력의 게임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곳이 아니라 팀워크가 중요합니다. 교회공동체는 홀로 독불장군식의 군대가 아닙니다. 교회의 사역은 상호협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섬기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 은사를 가진 성도들의 힘을 합할 때 교회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우리 삼광공동체가 함께 팀 워크을 잘 이루어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백전 백승할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하의용 목사

 

 

16.02.02 09:45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이후에 내려옴이 더디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요구하여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구합니다. 인간은 항상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신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아론은 백성들의 요구에 금붙이를 모아다가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사실 아론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신앙고백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하루를 여호와의 절기로 선포하고, 예배와 축제를 벌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올바른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날을 구별해서 예배하고, 열정적으로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예배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했는데, 정작 그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고백도 있고, 예배도 있는데, 하나님의 이름만 내건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주일에 예배도 드리는데, 정작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된 풍요의 신입니다. 사실 인간의 종교는 다 금송아지를 다르게 변형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종교는 다 인간의 필요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필요는 항상 종속변수이고 하나님의 목적이 항상 불변의 상수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나의 필요를 위해 믿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종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기독교가 우리 자신의 필요를 존재한다면 아무리 영적인 활동을 하여도 그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금송아지일 뿐입니다. 우리들의 삶과 성공은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목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그 분을 섬기는 가치는 우리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세상과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을 위하여 그의 영원한 계획과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고 이것을 따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은 내가 필요할 때만, 우리 자녀가 대학에 들어갈 때만, 내 삶에 문제가 있을 때만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글쓴이 하의용 목사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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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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