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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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등불이 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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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21 14:31

오늘은 36세의 나이로 대장암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난 ‘샬롯 키틀리’의 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은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작성한 글입니다. “살고 싶은 나날이 저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죽음을 앞두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어요.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습니다. 침도 맞았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놓고 나니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들 껴안아주고 뽀뽀해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얼마 후 나는 그이의 곁에서 잠을 깨는 기쁨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이는 무심코 커피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 아이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는 저만 아는데 앞으론 누가 찾아 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로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 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 그거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 번 뽑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 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루 하루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하며 삽시다.

17.03.16 15:58

.잠언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고 교훈합니다.(잠18:12) 그런데 교만한 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권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사람들의 조언이나 충고라는 것입니다. 홍정길 목사님의 목회 소신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꾸중할 사람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당신은 잘못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하기에 진실한 마음으로 ‘너는 실수하고 있어’, ‘너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야’라고 충고해 주는 사람이 우리 삶에는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조언자들을 통해 우리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주변의 사람이 자신에게 ‘당신은 이렇습니다’라고 권면하면 그 충고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제가 늘 쓰는 텍사스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당신을 말 엉덩이라고 부르면 무시하라, 두 사람이 당신을 말 엉덩이라고 부르면 거울을 보라, 세 사람이 당신을 말 엉덩이라고 부르면 안장을 사라’. 세 사람이 당신에 대하여 똑같은 충고를 한다고 하면, 당신은 그 충고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보통 사람들의 충고와 직언을 통해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만하면 듣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이유든지 간에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교만입니다. 이찬수 목사님의 어머님께서도, 이찬수 목사님께 매일마다 하시는 충고가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만하면 죽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지 않고, 자기 허물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니 결코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교만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정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까?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계십니까?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말씀을 듣고, 말씀에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합시다. 그러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17.02.24 17:40

교회공동체는 다양한 군상들의 집합체입니다. 교회전체를 이끌어가는 담임목사와 교역자들, 그리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당회, 그리고 실제적인 사역을 위한 직분자들과 기관 그리고 행정가들, 관리인들, 등이 존재합니다. 우선 교회의 리더들의 영향력은 바름과 정직함, 그리고 순결함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격과 삶이 바탕이 되지 못한 리더는 결코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기 쉽지 않습니다. 리더란 영향력을 주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리더들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영향력에 상처줄 거짓됨과 잘못 그리고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한번 무너지면, 회복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이후로부터 영향력은 상실되는 것입니다. 반면 성도들은 자신의 기득권과 자기중심적인 영향력을 위해서, 교회의 리더에 반역하거나 분파를 만들어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 당파가 만들어지고, 분파가 만들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유익이 아니라 그 속셈은 자신들의 기득권이요, 자기 영향력 때문입니다. 그러한 행동에 대해 성경은 ‘불량배’와 같은 행동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불량배들은 자기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싸움하는 자들입니다. 교회 안에 자기 세력을 유지하고, 자기 기득권을 위해 싸우는 행태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사실, 이러한 기득권 싸움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것은 무고한 성도들입니다. 교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교회를 어떤 개인이나 특정인의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따라서 모든 교인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결코 사람이 주인행세하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기업으로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17.02.17 15:04

옛 말에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옹지마’라는 말을 직역하면 ‘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이란 뜻입니다. 중국 북쪽 변방의 한 요새에 한 노인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말은 대단히 귀중한 재산이기에 이웃들은 큰 손해를 본 노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지만 노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일이 화가 될지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 도망쳤던 그 말이 암말과 여러 망아지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그것을 보고 ‘말씀하신 그대로’라고하며 축하의 말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인은 또 다시 “이게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라며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돌아온 말을 타다가 실수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지게 됩니다. 이에 다시 이웃 주민들은 위로를 건네지만 또 노인은 “이게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북방에서 오랑캐가 침략을 쳐들어 오게 됩니다. 나라에서는 징집령을 내리고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에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 말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져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세상 일은 변화무쌍하여 길흉을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즐거워할 필요없고, 나쁜 일이 있어도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어떠하든지, 그것 때문에 슬퍼하거나 또 너무 자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사람과 상황, 돈과 권력에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 변하고,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앙은 상황이 아닌, 오직 변하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뿐이기 때문입니다.(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17.02.10 16:47

죄는 학습성이 강합니다. 부모의 죄가 자녀에게 무의식적으로 학습됩니다. 보통 우리 주변에 제일 안타까운 것은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아이들이 나중에 가정폭력을 되물림한다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학습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또한 죄의 상처까지 되물림되어집니다. 우리는 죄가 되물림되거나 학습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모든 죄가 되물림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죄는 나쁜 영향력이 다음세대에게 악영향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죄가 대물림되고,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단절시켜야 합니다. 더 나아가, 앞선 세대는 책임있는 삶을 살고, 선한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교회에서는 영적리더와 교회 리더들이, 책임있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죄의 악순환이 아닌, 의로운 삶의 선순환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진정한 신앙의 영웅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지며, 하나님의 의를 대물림하는 일에 헌신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녀들이 성공하기만을 바라며 기도하는데, 우리의 선조들은 성공보다, 의롭게 살기를 기도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떳떳하고, 조국을 위해 살고, 이웃을 위해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들은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나의 삶으로 인해 자녀들이 세상의 가치를 배우고, 악한 행실을 학습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면 아무리, 성공하고, 부를 쌓고, 권력을 가지고 산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대물림하는 자들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가정 위에 이러한 의의 선순환적 삶이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17.02.03 15:46

신앙과 삶은 조급해서는 안됩니다. ‘조급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급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자꾸만 조급증이 생깁니다. 조급하면, 분주하게 움직이려고 합니다. 조급하면, 성급하게 행동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조급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입니까? 조급한 삶의 뿌리에는 자기주장이 있습니다. ‘내가 한다는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가할 수 있는 부분은 내가 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대부분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이 하십니다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때론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그림과 다른 그림들이 그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집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에 집중하다보면, 조금해집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자신의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사울에게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윗에게 광야는 그가 원했던 삶의 그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광야를 통해 다윗 왕국의 그림을 완성해 가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삶의 자리에서든지 하나님께만 집중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더라고, 하나님의 약속은 다른 방법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알아야 조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할을 하려고 하면, 조급해 집니다. 결국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삶의 조급증을 이깁니다.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내려놓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혹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되어집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여러분에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17.01.31 13:27

신앙은 인격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종교적 기술보다 인격적인 기초가 중요합니다. 인격이 바탕이 안된 신앙은 무례합니다.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인격적인 기초가 없이는 좋은 신앙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자도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인격이라는 그릇 속에 담겨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격을 바탕으로 한 신앙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선 상호간에 신뢰감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인격을 바탕으로 형성됩니다. 인격이 갖춰지지 않으면 신뢰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두 번째로, 인격은 인생의 방향감감을 잡아주는 나침반을 역할과 절제를 도와주는 브레이크(break)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게 하는 근본 요인은 인격입니다. 잘못된 결정을 막아주는 마지막 보루도 인격입니다. 따라서 인격이 바탕이 된 신앙이어야만 인생의 방향감각을 제대로 유지하고, 자신의 삶을 절제하게 됩니다. 셋째로, 인격을 바탕으로 한 신앙이 중요한 이유는 선택의 상황에서 힘들지만, 옳은 쪽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는 미국 최고의 지도자를 길러내는 사관학교입니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의 수준 높은 리더십 훈련의 비결은 바로 철저한 인성교육에 있습니다. 따라서 래리 도니손에 따르면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출신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의사 결정을 할 때 결정적으로 힘들지만 옳은 쪽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신앙은 인격의 틀 안에 담아내야 합니다. 좋은 신앙인이란 좋은 인격 안에서 싹띄워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격훈련을 어렸을 때 반복해서, 훈련받아야 합니다. 성경적 지식은 나이가 들어도 쌓을 수 있지만, 인격과 성품은 영유아와 유년, 청소년 시절에 모두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학교 교육이 중요합니다. 너무나 실용주의적 철학으로 우리 자녀들이 교육받아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도, 인성과 성품중심의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학교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답게 키울 수 있도록 지혜와 여건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17.01.20 16:27

오래 전 인터넷 기사에서 자신의 밥을 내어주어 주는 따뜻한 모습이란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은 한 사진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큰 개 한 마리가 자신보다 작은 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밥을 내어주고 심지어는 먹기 쉽게 밥그릇을 들어주는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 속의 큰 개는 말라뮤트였습니다. 그런데 그 큰 개는 숨겨진 아픔이 있었습니다. 동네 야산을 산책하던 어떤 한 부부가 잔인한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몽둥이로 말라뮤트한 마리를 무차별 구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곧장 신고를 합니다. 신고를 받은 119구급 대원들이 간신히 말라뮤트를 구조했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습니다. 동물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입과 코에 계속 피가 나올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병원에 옮겨진 말라큐트는 의료진의 도움으로 조속이 완쾌되어 갑니다. 씩씩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장군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됩니다. 그 후 완쾌되어 동물보호소로 이송되었지만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0일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동물보호소에서 보호받은 동물은 30일이 지나면 가슴 아프게도 안락사를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바로 깊은 감동을 주었던 그 사진은 장군이의 안락사 당일에 촬영된 사진이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알았을까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것을 다른 작은 개에게 나누는 모습을 생각하니 감동보다 아픔이 더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안락사 두 시간 전 장군이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극적으로 나타났고, 장군이는 새로운 가족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동물도 자신보다 약하면 보호해주고 배려해주고 살아갑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위로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우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힘들 때, 고단할 때 함께 울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가 나와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습니까?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동시대의 약자들을 맡기셨습니다. 이 시대에 수많은 약자들이 울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컷 기대고 울 수 있는 품이 필요합니다. 그 약자와 함께 누가 울어줄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적 보호의 손길이 되어 수많은 약자들의 위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7.01.13 15:1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자세히 알면, 하나님을 좀 더 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십니다. 엘 샤다이는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란 의미입니다. ‘엘 샤다이’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심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어떤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이레’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준비해 주십니다. 어떤 고통과 시험 중에서도 피할 길을 예비하십니다.(고전10:13) 또한 하나님은 ‘샬롬의 하나님’이십니다. ‘샬롬’이란 ‘평강’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샬롬’ 즉 ‘평강’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샬롬’, ‘평강’은 내적 평안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유지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결정해야할 상황에 놓이면, ‘하나님, 어떤 상황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까?’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참된 내적 평안도 임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로이’입니다. ‘여호와 로이’는 ‘여호와는 목자이다’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참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되심은 우리로 하여금 부족함이 없게 하려하심입니다. 따라서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자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닛시’입니다. ‘여호와 닛시’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깃발이 되신다’는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닛시’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또 다른 이름은 ‘여호와 삼마’입니다.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란 의미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임마누엘’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바라기는 올 한해 여호와 이름에 담긴 복(福)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17.01.06 17:31

어떤 공동체가 흥하고, 망하는 차이는 어떤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공동체를 이끌어 가느냐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전이 없는 공동체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비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비전의 근원입니다. 비전의 근원이란 비전이 어디에서 나오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비전이냐?’는 것입니다. 비전의 근원이 내 자신이라면 그 비전은 나의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반면 비전의 근원이 공동체의 유익 혹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선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비전의 뿌리가 어디에 근거하느냐를 잘 살펴야 합니다. 사람들은 높고, 큰 비전만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그 비전의 뿌리가 어디에 근거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 혹은 공동체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도 이 땅을 죄인들을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이 땅을 사셨습니다.(요10:10)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비전의 뿌리는 나를 키우고, 확대하고, 높이고자 하는 욕심이 아닌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이 더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마음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소원이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교회 공동체도 이와 같은 곳입니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 밖에 있을 때에 모두 영적부랑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의 섬김을 통해 부름받아 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무조건적인 은혜입니다. 따라서 교회공동체의 본질은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 확대하고 높이고자 하는 욕심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죄인들이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고, 연약한 자들이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또한 온전한 십자가의 사랑을 실현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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