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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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등불이 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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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6 16:18

16세기 스페인에 살았던 수도사 요한이란 분이 ‘영혼의 어두운 밤’이란 필생의 역작을 남겼습니다. 그는 교회 개혁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거센 비판을 받다가 결국 그는 투옥되게 되었고, 감옥에서 쓴 책이 영혼의 어두운 밤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는 영혼의 어두운 밤과 같은 시간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억울한 시간, 앞뒤를 알 수 없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믿음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상황,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이 안되는 상황, 예기치 못한 고난의 상황 등입니다. 수도사 요한이 이러한 시간을 ‘영혼의 밤’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영혼의 어두운 밤을 허락하시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일어나는 일로서 우리는 그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특별히 책망 받을만한 일이 없는 가운데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맞으면 이런 경우야말로 하나님의 주권적 행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영혼의 어두운 밤은 결국은 우리를 유익으로 인도해 준다.’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한밤중과 같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한밤중과 같은 때에 영적침체의 늪에 빠집니다. 어떤 이들은 원망과 절망으로 신앙을 져버립니다. 그러나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올 때, 우리는 자신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쳐야 합니다. 시편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낙심과 불안감에 좌우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외쳐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통제하려는 낙심과 좌절과 우울한 생각을 떨쳐 버리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하는 믿음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18.10.19 16:54

십계명의 제 9계명은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인데, 우리의 언어생활과 연관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언어는 존재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말을 가리켜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언어, 즉 말입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을 90%이상 드러내 준다고 합니다. 이것을 역으로 표현하면, 내가 어떤 말을 하는가가 나의 존재됨을 결정합니다. 남을 속이는 말을 하면 사기꾼이 되는 것입니다. 남을 말로 위로하면 상담가가 되는 것입니다. 남을 가르치는 말을 하면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언어 즉 말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싶으면,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를 잘 살펴보면 됩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말이 경건의 기준 가운데 하나임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 경건은 혀를 재갈 물리는 것입니다. ‘재갈’은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사람의 입에 물리는 물건입니다. 말을 해야할 때 하고,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경건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언어생활이 현재 여러분의 영적단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이 실수가 많으면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입니다. 반면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말하는 습관을 체크해 보시길 바랍니다. 거짓말도 습관입니다. 작은 거짓말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된 말은 결코 입 밖에 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말을 경건하게 사용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말이 바뀌면 삶이 바뀌게 됩니다. 제 9계명의 실천은 오늘 자신의 잘못된 언어 한마디를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18.10.12 17:03

교회는 두 세 사람 이상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두 세 사람 이상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반드시 갈등의 문제에 직면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갈등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선, 갈등의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갈등 가운데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일입니다. 한국 사람들 다혈질이고, 감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갈등의 상황에서 먼저 책상부터 뒤엎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결코 갈등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사실, 갈등의 근원을 파헤쳐 보면,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내면의 상태가 불안정할 때, 작은 자극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도화선이 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갈등의 문제에 앞서 자신의 감정의 상태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감정의 관리가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갈등의 문제는 논리적인 설득과 협상으로 풀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사실 서로의 대화를 통해 풀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화로 서로 풀게 되면, 그 이상의 파괴적인 관계의 결과를 미리 예방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문제의 갈등의 시작이 서로의 생각의 차이와 오해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사물도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에서는 잘못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보면, 서로 다르게 보았던 것이 이해되게 됩니다. 오해했던 부분이 풀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좀처럼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갈등이 생길 때, 진짜 신앙이 좋은 사람은 서로 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앉아 예배하는 것 똑같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마5:23-24에서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그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공동체 안에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갈 때, 오히려 갈등은 순기능으로 작용하여 더욱 공동체가 견실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18.10.05 16:37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사랑의 교회 수양관에는 故 옥한흠 목사님의 소박하게 단장된 고인의 묘지가 있습니다. 사실 그가 한국교회에 남긴 영향력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묘입니다. 그의 묘비에는 고인의 목회철학이 담긴 골로새서1:28~29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그의 묘비명이 나타내주듯이 옥한흠 목사님은 평생 오직 한 길 ‘제자 되고 제자 삼는’ 사역을 위해 헌신한 분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목회자 중심의 목회론에서 평신도를 목회의 동반자로 여기고 평신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옥한흠 목사님의 생애는 평신도 리더를 세우기 위한 열정의 세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교회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회가 시작되면서 처음에는 평신도가 자기 위치를 바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의 교회와 그 후 2세기 동안의 교회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또한 어두운 시대를 자주 밝혀 주었던 개혁의 횃불들은 거의 모두 평신도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14세기의 ‘위클리프 운동’이 그러하였고, 루터의 종교개혁 역시 수많은 평신도들의 지지로 가능했던 시대적 각성 운동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역사에 있어 개혁과 부흥의 시대는 대개 평신도가 깨어있는 때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평신도는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주체라는 사실입니다. 즉 교회의 리더는 목회자만이 아닌 모든 평신도 한사람 한사람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에서 평신도들이 교회의 리더임을 자각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주님이 세운 교회의 리더임을 인식할 때 교회는 교회다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주역으로써 평신도 리더가 가져야할 모습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첫째로 무엇을 하는가보다 하나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분명한 부르심의 목적 즉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써 모두 하나님 나라의 리더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많은 새로운 평신도 리더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는 리더가 되길 소원합니다.

 

 

 

18.09.28 16:38

우리의 삶과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수세기 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무식한 하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스 허먼’입니다. ‘니콜라스 허먼’은 나무를 보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한겨울의 나무는 앙상했지만, 봄이 오면 나뭇잎이 다시 자란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니콜라스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능력을 깊이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무를 돌보신다면 분명히 사람도 돌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니콜라스는 수도원에 들어가 주방에서 요리와 설거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브라더 로렌스입니다. 그가 죽자 친구들은 그가 쓴 편지를 모아 책으로 엮었습니다. 제목은 하나님의 임재연습입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접시나 닦던 사람이 쓴 이 17세기의 작품은 인류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가장 널리 읽힌 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소소한 일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의 평범한 삶에서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출퇴근 길은 체증과 지각으로 시련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큰 부담이나 지독한 권태가 될 수도 있고, 회의마다 전화마다 마감마다 함께 하실 하나님을 상기시켜 줄 수도 있습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서 하나님께 “오늘 함께 해주세요”라고 간구하는 자가 진정한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평범의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의식적으로 찾는 자가 영성이 깊은 자입니다. 자신의 일상을 대예배당으로 삼는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종교생활이나, 묵상에 전념하고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창조주, 경영주이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영혼과 내면에 평안과 만족이 넘치는 생활인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그리스도인의 꿈입니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18.09.21 16:15

 10월 첫 주에 임직투표가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것은 교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대사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병들게 했던 가장 큰 문제가 교회 직분을 교회의 계급이나 신분 혹은 위치로 잘못 착각한데 있습니다. 제직은 신분이 아닙니다.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신분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됩니다. 제직은 말 그대로 일을 위한 직분의 구분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번 임직투표는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임직을 할 때 기억해야할 사항이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수신자는 데오빌로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데오빌로의 호칭에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데오빌로에게 각하란 호칭을 붙여 기록하고 있지만, 사도행전은 그냥 ‘데오빌로’여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데오빌로를 부르는 호칭을 통해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어떤 곳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보통 어떤 사람이 교회에 처음 입문하게 되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세상적 위치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원숙한 교회공동체의 가족으로 성숙해지면 세상의 위치나 사회적 지위는 더 이상 중요한 가치가 되지 못합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같은 성도요, 같은 가족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만큼은 세상의 지위와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족으로서 대접받고 동일하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따라서, 제직을 선출하는데, 세상의 위치나 지위나 돈이 많고, 적음을 따지는 일이 있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리고 ‘니 편이니 내 편이니라’는 구분이 없어야 합니다. 니 편이니까 찍어주지 않고, 내 편이니 찍어준다는 식은 생각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기존의 성도와 옛 성도들을 구분해서도 안됩니다. 이런 구분을 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해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려는 자들이요,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자들입니다. 만일 이런 구분이 발생한다면, 이것은 교회와 하나님을 향한 범죄이요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교회에서 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꾼선출은 교회가 필요한 일꾼을 세우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니편 내편, 기존의 성도, 옛 성도라는 구분을 짓지 말고, 교회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꾼들이 많이 세워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18.09.14 20:46

 

최윤식 박사의 말을 빌리면 직장에 보면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부류는 많습니다. 또 다른 부류는 자신이 지금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이 일을 통해 진정으로 무엇을 이루어야 할지 사명감 있게 일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적습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릅니다. 일을 잘 하는 것은 시키는 대로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업의 본질을 알고 일하는 것입니다. 업의 본질이란 그 업이 존재하는 기본입니다. 그 업이 존재하게 하는 핵심가치입니다. 이처럼 업의 본질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에 보면 예수님의 관심(사역)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해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하는데 전력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하는 대리자로 세우셨습니다. 따라서 교회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는 동역자입니다.(고전3:9) 존 칼빈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전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복음을 증거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필요한 것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붙들어야 교회가 살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본질을 굳건히 붙들어 회복의 자리로 나아가길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18.09.07 16:41

열왕기서에 보면,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지도자들 때문입니다. 지도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 중에 하나가 역사관입니다. 그런데 역사의식이 없으면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국가의 지도자가 당시 근동의 국제정세를 감안하지 못하고, 매우 어리석은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되어 결국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공동체의 흥망성쇄도 지도자들의 책임이 큽니다. 지도자가 역사의식이 없이 그저 안주하기만 하면, 교회공동체는 쇠하게 됩니다. 물론, 한 나라 혹은 한 공동체의 흥망성쇄가 비단 리더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한 나라의 지도자가 실정을 하더라도, 국가 전체 혹은 공동체 전체가 건강하다면, 결코 멸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열왕기 저자는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더욱 근본적인 신학적인 답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살아가는 존재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존재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공이나,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 더 잘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 사랑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을 잃어버리니까 자신을 위해서 세상과 혼합하여 살고, 돈과 명예와 자기쾌락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살면 결단코 망하게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결코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 특히 성공과 돈과 쾌락의 우상을 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기 위해 힘을 다해야 합니다. 비록 가진 것 없고,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더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묵묵히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망하지 않고 성공하는 길입니다.

 

 

18.08.31 16:04

오늘날 교회론에 대한 관심은 선교적 교회론에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론은 한마디로 지역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 것이 선교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는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무척이나 소비자 중심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의 필요와 요구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교회라 하면, 교인들이 편안하게 다니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도가 주인이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과 필요가 최우선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제한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능한 일만 도전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개입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서 불가능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날 지상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는지 모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계산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의 일을 하는데 너무나도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기관이나 조직과 다를 바 무엇입니까? 교회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기적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순종이 기적을 하나님의 기적을 잉태합니다.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 하는 것이 복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가 기적이 일상이 되는 교회가 되길 소원해 봅니다.

 

 

18.08.17 15:14

향년 103세의 일기로 소천받으신, 방지일 목사님의 좌우명은 “닳아서 죽을지언정 녹이 나서 죽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좌우명이야말로 진정으로 이 땅을 소명자로 살아가는 자의 진정한 자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는 선택되어 부름받은 소명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명자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선, 소명자는 자신의 능력 너머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부르신 자의 능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능력과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자기 일’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자를 부르셔서 그 부족함을 친히 채우십니다. 세상은 이미 만들어진 사람을 택하지만 하나님은 택하신 후에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용병술과 하나님의 용병술의 차이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 이제 할만큼 다 했습니다’라는 생각은 모두 다 자기 생각입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120세까지 일했습니다. 나이가 든 소명자의 강점이 무엇입니까?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시력도, 약해지고, 귀도 안들리고, 다리의 힘도 약해지고, 모든 것이 쇠하여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듦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나이듦이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욱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소명자는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일상)을 조율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기준으로 조율해서는 안됩니다. 늘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아이라’는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나는 나이가 들었다’고도 핑계대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능력이 없어서’, ‘건강이 안좋아서’, ‘몸이 불편해서’, ‘나이가 많아서’, 다 핑계입니다. 우리는 닳아서 죽을지언정 결코 녹이 나서 죽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다음 세대들에게 희망을 건네주는 믿음의 선배들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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