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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9 21:5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감염예방 및 확산 방지 차원에서 교회시설 사용 일시 중지하는 교회들이 늘고 있다. 교회시설 이용 일시 중단으로 인해 주일예배를 다양한 방식으로 대체하기 위해 교회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주일예배 대체를 놓고 일부 논쟁이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예장통합 예장고신 기감 등 일부 교단과 신학교가 코로나19 정국에서 교회가 취해야할 가이드라인과 주일예배 대체에 따른 신학적 고찰 등으로 교회가 겪을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총회(총회장:김종준 목사)는 현재까지 큰 틀에서 지역과 교회 형편에 따라 당회가 지혜롭게 결정하면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총신대학교(총장:이재서 목사) 신학대학원위원회가 228코로나19 상황 주일예배 형식 제언을 발표했다. 총신대 신대원위원회의 시의적절한 이번 발표가 교단 산하 교회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취할 결정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상황 주일예배 형식 제언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가정에서 온라인생중계 등의 방식으로 주일예배를 드리는 현상을 신학적·역사적·실천적 차원에서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위원회가 낸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의 주일예배 형식에 대한 제언전문.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의 주일예배 형식에 대한 제언

 코로나19 감염이 지역사회로 심각하게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이 상황과 관련하여 주일예배를 가정에서 혹은 영상송출을 통하여 드리는 것이 가능한 지에 관하여 논의와 문의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위원회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의 주일예배 형식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에 관점에서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신학적 고려가 필요합니다.

개혁교회는 성경에서 가르친 것만을 예배의 원리(규정적 원리)로 삼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 구약의 안식일 제도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예배당에서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공예배를 임의로 소홀히 하거나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10:2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6). 즉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가 온전히 지켜야 할 신앙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예배에 관해 성경에 직접적인 근거가 없는 것들은 성경 말씀의 일반법칙에 근거하여 본래의 이성과 기독교적인 분별력으로 처리해야 할 환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는 사안에 따라 당회가 일정한 결정을 내려 다른 형태의 예배를 취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을 따르는 교단 헌법 제 6).

 물론 다양한 형태의 예배 가운데에서도 예배모범을 따라서 예배의 기본적인 요소(기도, 찬양, 말씀, 성례(정기적), 헌금; 예배모범 18)들을 지켜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예배의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여 때, 장소, 형태에 대해서는 지혜와 분별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가정은 초대교회의 예배장소이기도 했기에,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는 성경적인 근거에 기초한 가장 본래적인 예배 형태입니다(2:46; 5:42; 12;12; 16:15; 1:2).

 두세 사람이 모였어도 참된 신자들의 모임인 것입니다(18:20). 또한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의 상황에 처했다거나, 해외 선교지에서 핍박을 피하여 은신처에 숨게 되었다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병원에 거하게 된 경우라면, 예배당에 모여 드리지 않는 예배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로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27년 비텐베르크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 마르틴 루터는 떠나지 않고 남아서 환자를 돌보고 강의를 진행했으나, 남은 자들을 돌볼 수 있는 목사의 숫자가 충분할 때 그는 더 많은 목사들이 감염될 필요는 없으니 굳이 올 필요는 없다면서 이러한 행동[감염에 노출하지 않는 것]을 죄로 간주하지 않는다. 왜냐면 영적 예배들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요 필요하면 얼마든지 머물고자 했기 때문이다”(Luther's Works, vol. 43:121)라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확산 상황은 전염병의 창궐이라는 천재지변에 준하는 재난입니다. 또한 이단 신천지의 추수꾼들이 예배에 침투하여 바이러스를 고의로 전파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급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 재난에 대한 긴급한 대응으로서의 조치를 고려하여 실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실천적 고려가 필요합니다.

 공예배의 실천을 강조하는 개혁교회의 예배 정신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와 성도간의 수평적 관계를 모두 포함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언약 갱신과 더불어 언약공동체로서 연합, 교육, 건덕 역시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예배당을 통해 전염병을 확신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라면 공동체적 모임을 당회의 결정과 감독에 따라서 다른 형태의 예배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발생한 위기 상황 가운데 교회는 개인의 신앙도 존중해야 하지만, 국민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사회를 안정되게 하기 위한 실천에도 앞장서야 함이 마땅합니다. 온 피조세계 만물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도록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나가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힘써 기도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재정 후원이나 자원 봉사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 나라를 섬겨야 합니다. 또한, 대중적 집회를 통한 감염확산을 방지하고 신천지 이단 집단의 바이러스 전파 시도를 미연에 차단하여, 교회 내의 성도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코로나19 감염이 지역사회로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 존재하는 교회로서 지역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기도와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고려에 근거하여 교회는 재난에 대한 임시조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중 모임을 최소화하고, 필요한 경우 선제적인 대응으로써 예배장소를 변경하여 가정에서 혹은 영상송출을 통해 주일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임시적 특별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예배회피나 말씀에 대한 불복종은 아닐 것입니다. 비상적인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고 교회 성도들의 건강을 보호하며 지역사회의 보존을 위해 협력하는 신앙 실천의 한 형태일 것입니다.

 만약 신앙에 대한 배도, 예배 회피로의 유혹을 마주한 경우라면, 생명을 걸고서라도 예배당에 모여 주일예배를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는 재난의 상황에 처한 성도들을 돌보고 지역사회를 지켜내야 하는 특수한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고 지역마다 상황이 다를 것이므로, 어떤 방식의 대응이 적절할 지는 각 교회가 지혜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이 때 네 가지를 유념하면 유익할 것입니다.

 

 첫째, 각 교회는 당회의 논의 혹은 그에 준하는 총회가 정한 방식을 통해 공적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는 정부의 권고나 여론의 동향에 기초한 결정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과 교단헌법의 원칙에 기초한 신학적, 목회적 결정이어야 합니다.

 

 둘째, 예배당에서의 예배가 힘든 경우라면, 가정예배를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예배모범 15). 가정예배는 공예배의 확장이자 구체적 실천 장소입니다.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라는 예배신학적 측면에서 임시적이며 보충적 조치입니다.

 

 셋째, 가정에서 혹은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릴 때 성도들이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드릴 수 있도록 목양적 인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코로나19 확산의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예배당에서 드리는 공중예배로 즉시 복귀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이번 사태를 마주하며 우리는 그동안 주일에 예배당에 모여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었음에 대해 깊이 감사하며, 이 상황을 바른 예배의 정신과 실천을 향한 예배 갱신의 기회로 삼기 위해 노력하고, 지역사회에서의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이단의 훼방을 물리치고, 지역사회에 전도의 문을 열어가는 길로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20. 2. 28.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위원회

 

20.02.22 20:50

어느 시대든지 전염병의 문제는 개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화합이나 하나됨을 위협하는 요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문제는 단순히 우리 시대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중세 말 흑사병이 온 유럽을 강타했을 때,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흑사병은 각 개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연대감과 신앙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박욱주 연세대 교수의 칼럼에 의하면 당시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상황이 심해지자, 의사, 사제들이 흑사병으로 죽는 환자의 죽음을 돌보는 일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임종을 맞이하는 성도는 카돌릭 교리에 따라 종부성사를 통해 면죄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방치된 채 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일차적으로 교회 권위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고, 이차적으로 죽음 너머에 대한 신앙인의 소망을 좌절시키는 문제를 낳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죽음이라 교회의 돌봄 하에 복된 내세로 건너가는 관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우리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중세 흑사병의 위험처럼 앞으로 신종 전염병의 위험성은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나 현실에서 교회 공동체의 예배와 연대감을 더욱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는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어떻게 교회 성도의 건강을 보호하고, 또한 교회가 새로운 전염병이 주는 공포와 죽음의 위협을 극복하는 보루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어떻게 지혜롭게 교회공동체의 예배와 연대감을 지켜내야 하는가의 고민이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계속)

20.02.14 18:09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화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peace with God”이라고 합니다. 롬5:1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란 말을 한 이면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하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 속에 있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깨어진 화평의 관계를 연결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로부터 화평의 관계로 회복되어집니다.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아버지의 관계가 되게 하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이 회복되면 그 다음 우리는 ‘하나님의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을 ‘emotional peace’고도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내면의 삶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빌4:6-7에서는 ‘하나님의 평강이’(peace of God)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화평의 도구가 기도입니다.(빌4:6-7) 우리의 실존에서 우리의 내면을 위협하는 것이 염려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는 우리의 염려와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이 화평을 가져다줍니다. 두렵고 염려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을 만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2:18에서 “할 수만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구원이란 하나님과 나와 다른 사람과의 무너진 관계가 회복되고, 참된 화평의 관계로 회복되는 삶입니다.
 

20.02.08 16:51

구원얻은 자의 삶의 특징이 있다면, ‘참된 기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가장 기쁨은 하나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그의 자녀됨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부를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전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그의 자녀됨으로 기뻐하지 못하고, 기쁨을 상실한 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께 질문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의 자녀됨으로 인해 항상 기뻐하면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기쁨의 근거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됨입니까? 신앙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아들됨을 누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든 특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이 우리의 행위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듯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의 근거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얻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가를 깨닫는 신앙인 되시길 축복합니다.
 

20.01.31 10:00

한 번은 어떤 교우께서 ‘목사님은 왜 확신반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십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확신반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에 부목사 시절에 섬기던 교회에서 세례 베푸는 사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세례를 줄 때, 반드시 세례받는 자가 구원간증문을 쓰고, 그것을 온 회중에게 읽고 세례를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례를 받으시는 분들의 구원간증문을 정리해 주었는데, 그 가운데는 10년, 20년 교회를 다녔는데 세례를 받지 않은 분들이 상당수 계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기회나 시간이 없어서 세례를 못받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교회를 오랫 동안 다니면서 복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한 번도 듣지 못한 분이 대다수였습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그때부터 제 마음 속에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복음을 소개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확신반은 우리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회철학 중에 하나입니다. 따라서 확신반은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필수 과정일 뿐만 아니라 복음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위해 기존의 성도들 또한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교회의 사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명은 복음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오직 교회만이 복음을 소개할 수 있고,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복된 소식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복음을 듣는 것이 복이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기에 확신반은 복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확신반 31기입니다. 아직까지 확신반에 한 번도 참여 못한 성도가 계시다면 꼭 참여해 보시길 바랍니다. 
 

20.01.23 17:58

올 해 ‘오직 은혜’란 주제에 힘입어, 처음으로 초하루(월삭) 새벽기도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초하루(월삭)라는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너의 달들의 시작에’가 됩니다. 즉 각 달의 초하루, 매 월 1일을 가리킵니다. 민28:11-15, 사1:14에 보면, 초하루(월삭)이란 절기가 나옵니다.물론 우리는 구약의 절기를 지키지 않습니다.그러나 절기가 갖는 의미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초하루(월삭)는 처음 것을 소중히 여기는 신앙입니다. 처음 것은 항상 하나님의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따라서 초하루 즉 월삭에 대한 개념도 그러한 의미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달이 시작되는 첫 날 새벽에 초하루(월삭) 예배로 하나님께 예배함은 이어질 한 달(30일) 모두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초하루(월삭) 때에는 속죄제를 드렸는데, 그 이유는 지난달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후, 번제를 통해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달에의 삶이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되게 하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월 1일에 드리는 초하루(월삭) 새벽기도회는 지난 죄된 삶을 돌이키고, 새로운 달에는 더욱 하나님께 온전한 삶의 예배를 드리겠다는 새로운 헌신을 다짐하는 시간이 됩니다. 끝으로 이사야 66:23에 보면,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월삭)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고 말씀십니다. 초하루(월삭)와 안식일은 모든 가족들이 모두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초하루(월삭) 새벽 기도회는 온가족이 함께 하는 예배와 기도의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바라기는 초하루(월삭) 새벽기도회가 오직 은혜를 위한 신앙의 기초가 되는 시간이 되어지길 소원해 봅니다.

20.01.17 18:04

할렐루야! 이번 주일은 49주년을 맞이하는 기념주일입니다. 49주년 올해는 무엇보다도 교회창립 50년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야할 중요한 해입니다. 사람의 인생으로 비유하자면 30대는 입지(立志)라 하여 ‘뜻을 세우는 나이’라고 하고 40대는 불혹(不惑)이라 하여 ‘미혹되지 아니하는 나이’라고 하며 50대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여 ‘하늘의 뜻을 알아가는 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처럼 명확한 구분으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나이로 비유하자면 삼광교회는 이제 세상에 미혹되지 않고 온전히 하늘을 뜻을 온전히 알아가는 시점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을 시작하면서 기대가 큽니다. 세월의 수만큼 하나님의 은혜도 많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상황으로까지 이끌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 삼광교회가 2020년을 기점으로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교회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해 표어인 ‘오직은혜’는 매우 적절한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만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업으시고 안으시고 인도하신 따뜻함만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요,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오직 은혜였듯이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해야할 모든 사역들 역시 오직 은혜가 없으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뼈져리게 느껴지니까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이 더욱 온전히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가 함께 기도의 동역자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혜택은 우리의 선배들의 피 땀어린 눈물과 수고와 헌신의 댓가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믿음의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1.11 15:27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오직 은혜입니다. 은혜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을 하나님께 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은혜로 삽니다. 히4:16에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때에 맞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올 한 해도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사계와 같이 인생의 푸름과 녹음의 시간이 존재하기도 하고, 풍성한 가을과 같은 시기가 있는가 하면, 인생의 혹한기를 겪기도 합니다. 우선 인생의 혹한기가 찾아오면 우리는 무기력함에 빠집니다. 내 힘으로 살 수 없다는 처절함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인생의 혹한기에 시31:9에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쌓아두신 은혜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 은혜를 큰 은혜 혹은 숨겨둔 은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쌓아두신 은혜가 말로 다할 수 없이 크고, 평온한 시기에는 경험할 수 없는 혹독한 시절에만 경험되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힘겨울 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쌓아두신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 고난을 덮고도 남는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평온한 시기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이미 주신 것을 깨닫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은혜도 귀하지만 이미 내게 주신 은혜를 깨닫는 것이 더 귀합니다. 내게 없는 것만 생각하면 내게 주신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인생이 가을날처럼 풍성할 때 구해야할 은혜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주신 것을 나누는 은혜를 필요합니다. 주신 것을 나누는 삶이 복입니다. 또한 말씀대로 사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넉넉하고 배부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기 쉽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2020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때에 맞는 은혜를 구하셔서 오직 은혜로 사시는 복된 날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19.12.07 10:41

많은 사람들이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예를 들어서, 2004년 12월 26일 아침에, 인도양 연안에 어마어마한 지진해일이 들이 닥쳤습니다. 그 결과 대략 2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간 계속해서 신문과 잡지에는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란 기사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이런 악과 고통 앞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선하고 강한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악과 고통을 허용할 수 있느냐?’ 사람들은 만일 선하고 강한 하나님이 계셨다는 결코 이러한 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분명하게 고난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분리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고난과 고통의 문제들과 죽음이 초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악과 고난의 문제를 해결하실 것임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악과 고난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악과 고난에 직면해 살아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통 중에도 아침에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왜 고통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고통과 동떨어진 신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 가운데 계신 분이십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이길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약5:13에서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허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난을 통해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귀함과 높으심을 깨닫게 하시고,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고통은 버림받음이 아닙니다. 고통은 하나님을 더욱 간절하게 바라보는 기도의 통로가 될 뿐입니다.
 

19.11.30 11:06

예배의 첫 순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임재해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아갈 때마다, 예배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의식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죄의 각성과 고백이 생겨납니다. 하나님 임재 앞에서 찬양하며, 기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의 순서 가운데 죄의 고백이 반드시 중요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고백이 있으면 반드시 죄용서의 선포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사죄의 확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씻음을 받았다는 확신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죄사함의 선포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설교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선포 역시 하나님께 초점이 두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말씀 선포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아 오늘 은혜받았다, 오늘 설교 좋았다’는 것으로 끝나면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결단과 순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순종이란 단어는 흩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결단하여, 삶의 현장으로 흩어져서 선포된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결과입니다. 결국 예배의 결과는 사명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우리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사명자로 각자의 삶으로 파송되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가지고 삶으로 나아가, 삶의 현장에 말씀을 실재화시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결과입니다.

 

삼광교회 연혁

 

교회 태동(1970년~1980년)

 
1971. 1. 3
설립 예배 (서대문구 홍제2동 산33번지에서 이경재전도사 가정에서 정희임 이덕순 이은순 김덕양 고태윤 양수연씨, 등 7명이 예배드리다)
 
1974. 6. 3
교회 건축을 시작하다.
 
1974. 7. 18
교회 건축을 완공하다.
 
1975. 3.
이경재 전도사 목사임직.
 
1975. 4.
실행위원회 조직하다
(위원:조덕규 한창규 김장용)
 
1977. 11.
용인기도원 부지 매입하다.
 
1978. 7. 17
용인기도원 건축 준공예배 드리다(25인승 소형버스 구입).
 
1982. 3. 14
실행위원회를 조직하다.
(위원:장인봉 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김명남 안명훈 이은애 김정애)
 

전환기(1985년)

 
1982. 4.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소속으로 가입하다.
(복구 용천노회 제1회기 회원교회가 되다).
 
1984.
용인기도원 매각하다.
 
1985. 6. 30
교회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다.
(홍제2동 321-28에서 홍제1동 158-23).
 
1986. 6. 8.
공동의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피택하다.
 
1986. 10. 5.
위임 및 임직예배(이경재목사 제1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제1대 장로 장립(한창규 김근호 나윤섭 이명수 장로)
제1대 안수 집사 장립(김명남 김동명 이은재 집사)
제2대 권사 취임(엄부자 강용순 김순환 김정애 엄인덕 변정섭 권사).
 
1989. 3. 6.
삼광선교원 개원.
 
1990. 4. 17.
용천노회 정기회(이경재목사 노회장 선출).
 
1990. 9. 16.
공동의회-안수집사 피택(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1. 1. 13.
제2대 안수집사 장립(이갑운 김장용 강정근 표충복)
 
1994. 12. 3.
제2대 장로 장립(김명남 이갑운)
제3대 안수집사 장립(김영호 김정남 박종덕 안명훈 이근영 장삼수 전영선 한성웅)
제3대 권사취임(김말미 김명식 김성예 김옥순 선우순정 선우순필 선우정혜 윤일병 심개춘 이숙경 이옥자 정옥희 조영자 진말례 최신애 하정순 한영희 홍경애 홍기춘 황분선)
 
1995. 4. 29.
제3대 장로 장립(김장용)
 
1995. 8. 23.
창립25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
 
1996. 3. 3.
창립25주년 기념예배. 25년사 발간 *사택 매입 후 담임목사 명의로 이전 등기필.
 
1996. 6. 6.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7. 29 ~ 8. 1.
창립25주년 전교인 수련회(주일학교~장년부)
 
1996. 10. 3.
창립25주년 전교인 체육대회
 
1996. 11. 11.~14.
창립25주년 부흥회(강사 : 우희영 목사)
 
1996. 12. 22.
창립25주년 기념음악회
 
2000. 10. 16.
교회증축 기공예배, 증축시작.
 
2001. 9. 30.
교회중축 완공하다.
 
2001. 11. 4.
증축 입당예배를 드림.
 
2002. 1. 13.
은퇴식 장로 : 한창규 집사 : 안명훈 권사 : 황분선 엄인덕 강용순 진말례 정옥희.
 
2004. 6. 27.
제4대 장로장립(한성웅)
집사장립(송희영 김찬기 임춘선 임동원 김균수)
권사취임(김혜경 장영옥 김정옥 양산옥 김영화 최용선 안순근 임신자 이은순 김혜원 김준연 명예권사(박순묘 심복성 정춘란 윤정임)
 
2007. 12. 30.
김근호장로 은퇴
 
2009. 9. 6.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하다.
 
2010. 4. 18.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재구성하다.
 
2011. 1. 22.
헌당 및 임직예배
원로장로 추대 : 김근호 장로
제5대 장로 장립(김찬기 임춘선)
집사 장립(최명환 유민재 조기성)
권사 취임(이연숙 이영희 전봉선 조숙자)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김명식 김성례 변정섭 선우순필 하정순 홍경애
 

도약기(2011년)

 
2011. 10. 2.
하의용 담임목사 부임
 
2011. 12. 31.
이경재목사 원로목사 추대 하의용 목사 제2대 담임목사로 위임하다.
 
2014. 1. 19.
은퇴식(장로 : 김명남 이갑운, 집사 : 박종덕, 권사 : 홍기춘)
 
2015. 1. 18.
은퇴식(장로 : 한성웅, 권사 : 심개춘 이옥자 한영희)
 
2016. 1. 17.
은퇴식(집사 : 김동명, 권사 : 김정옥 김혜경 조영자)
 
2017. 1. 15.
제6대 집사 장립(정운관 이상남 김두환)
제6대 권사 취임(최지숙)
명예권사 추대(곽양근 주정이 나복임 김화선 최정지)
 
2018. 1. 21.
은퇴식(집사 : 송희영, 권사 : 김영화 최용선 임신자)
 
2019. 1. 19.
집사장립, 권사취임, 은퇴식
제7대 집사 장립(송희준 송태원 동영탁 최재현 장근수 양동춘)
권사 취임(임순자 조미정 나영임 한효숙 구영숙 조인숙 김옥진 윤영희 박나영 김춘화 김효정 전미영 임혜숙 서숙희 김경미)
명예 권사(강정순 김영자 김홍분 맹정희 송이순 정선화)
은퇴식 : 안순근
 
2019. 12. 29.
은퇴, 이명수 장로
 
2021. 1. 16.
창립 50주년 기념
제 6대 장로 장립(송태원, 김두환)
제 8대 집사 장립(김재목, 유현상)
제 8대 권사 취임(조성은)
 
2022. 1. 16.
창립 51주년 원로장로 추대 및 은퇴예배
원로장로 추대 : 나윤섭 장로
안수집사 은퇴 : 최명환 집사
권사 은퇴 : 김준연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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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35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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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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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301-0170-4479-41 삼광교회
보내시는 분 성함+헌금내역
예)홍길동십일조, 홍길동감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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